애린 이종희

산문

야간열차

오래전

명절을 쇠러 가기위해

서울역에서

전라선 야간열차에

몸을 싣던 날

미리 예매할 수 없었던

좌석표 대신

극적으로 구입 한

입석표 한 장 들고

귀성객들에 떠밀려

겨우겨우 기차를 탔다.

입석은 맨 끝 좌석 뒤

좁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면

특석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통로에 서 있거나

화장실 앞에 서 있기도 하고

기차와 기차의 연결 통로에

기대어 선다.

아무리 내 자리가 확보되어 있어도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계란이 왔어요~

땅콩이 왔어요~

아저씨의 목소리는

이제 곧

음료수와 군것질거리들을

가득 실은 손수레가

등장을 한다는 신호이다.

신문 깔고 앉았던 사람은

일어서야 하고

맘씨 좋은 좌석 표 주인이 내준

팔걸이에 앉아있던 사람도 일어서

세상에서 제일 유연한

몸동작을 취해야 한다.

수원을 지나고

대전을 지나고

전주, 남원이 지나고

곡성도 지나면

녹색 의자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 자리가 내 차지가 되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폭신한 의자에 앉아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고서

스르르 단잠에 빨려 든다.

“여기는 순천, 순천입니다. ”

내리실 분은

미리미리 짐을 챙기라는

안내방송이 꿈결에 들리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본다.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구정 설 때는

여전히 깜깜하지만

추석 한가위 때엔

산등성이 따라

검푸른 하늘을 밀치고

아침노을이 출렁인다.

그 풍경을 보노라면

간밤에 치르던 전쟁쯤이야

영화였을 거야~

꿈이었을 거야~

그렇게 쉽게 털어내고는

경직된 몸을 뒤척여

기차가 종착역에 닿기도 전에

내 마음은 그리도 바빠

출입구에 서 있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어쩌다 고향을

그 섬에 두고 떠나와

다시 뱃길의

안부를 물어야 하고

뱃길이 열려만

닿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어김없이 여객선 터미널에 가득 찼고

그중에 내 친구를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흘러간 세월쯤이야 얼마든지 돌이켜

그때 그 시절로 내달릴 수 있었다.

여기는...

군내리입니다.

화태입니다.

두라리입니다.

유송입니다.

우학리입니다.

미포입니다.

안도입니다.

심장리입니다.

그리고...그리고

서고지입니다..

건너온 바다의 거리만큼 해는

느릿하게 중천에 떠 있는데

서고지라 내린 곳은 섬이 아닌

바다 위에 뜬

작은 종선이었다.

저 멀리 선창가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밤새 야간열차를 타고

멀고도 먼 공간을

지나오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쑥떡을 만드시고

조청을 고시고

내가 좋아하는...

좋아하는...음식을 만드시며

무사히 돌아오라고

빌고 또 비시느라

하얗게 밤을 새운

울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그 시절

우리가 보았던 건

환영이었을까.

여전히 밤차는 떠나고

여전히 명절은 다가오는데

우리가 보았던 그 많은 풍경은

어디에서 찾고

우리는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이

위태하게 몸을 실은

입석표 자리인지도 모른다.

떠났던 많은 것들처럼

우리를 실은

밤기차의 기적소리는

의식을 깨우고

꿈을 깨우며

오늘도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