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지우개

모두 지우고 싶다고

무심히 절망할 때

어디선가 너는

꿈도 의지도 없이

무너지고 있겠구나.

헝클어진 자리마다

꾹꾹 눌러 그린

풋내나는 자화상

지우고 또 지워

순백의 모래탑을

허공에 쌓고도

온기 없는 흔적을

찾고 또 찾겠지.

그것마저 흩어져

사막을 이룰 때

타는 목을 축이고

속 깊은 별 하나

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