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지(시)

서고지 (1)
오래전
집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에서
서고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날은 노을 한 잔에
온 섬이 주홍으로 번져있고
어떤 날은 칡잎이 산을 향해
허연 속살을 들키고 있었습니다.
층층이 다랑논 위로 넝쿨진 초록이
웃서고지 오르는 길을 지울 때면
등고선 보리밭들은 누렇게 채색되고
바다가 그리운 점박이 나리꽃은
오랜 날 절벽 끝에 걸터앉아
서녘 바다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다랑논 물줄기는
제 몸을 들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하의 입김이 나부낄 때마다
물방울은 다랑논에 기대어
굳었다가 흘렀다가를 거듭하며
부푼 채로 봄을 기다려야 할 테니까요.
그 옛날 서고지의 한 귀퉁이는
남포 소리에 산산이 허물어져
방파제 아래 깊숙이 수장되었고
그 푸르던 유년의 바닷가는
회색 길에 묻혀 빈 추억으로 떠도는데
숱한 사연으로 다져진 오솔길마저
새로운 걸음으로 끊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망산은
철렁철렁 내려앉은 마음을 보일 수 없어
지나는 해무를 붙잡고는 고개를 숙이는데
그 섬은 내가 무심히 닿을 때도
버선발로 마중하신 우리 어머니 마냥
몇 날 며칠 그렁그렁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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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적 구조/회전시점/고정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