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기차를 타고 (포토에세이)

속도를 견딘 빗방울이 무사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들녘은 마를 틈 없이 회색으로 번지고

길은 길 위에서도 길을 냅니다.

밤새 달려온 가로등이 구름을 떠받고

수직 낙하해 지면에 닿은 습이 놀란 표정으로 일제히 일어섭니다.

빈 터가 또 다시 무수한 초록에 수장되고

플랫폼도 내 마음을 아는 듯 자주 마음을 비우고 있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마냥 오늘에 머물러 오늘을 느껴야겠습니다.

그야말로 찰나의 감정을 견딘 보람으로 세워진 오늘입니다.

끝없이 차오르는 불안과 타협하며

그늘을 밀치는 연습을 했고,

간이역 같은 공허가 흠뻑 젖게 하는 날엔

흔들리는 마음의 궤간을 어찌할 수 없어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걸 지웠다, 마음을 놓을 때

온 힘을 다해 잊었던 그리움 하나

불쑥 다가와 아무일 없는 듯

너무 해맑아서 오히려 더 낯설고 슬펐던

그런 허탈한 마음을

떠미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가끔은 평행선으로 끝나는 선로가 참 다행일 때가 있습니다.

스쳐온 날들이 비록 어떤 소실점도 없이 지워지고

견고한 다짐들이 꿈처럼 사라진다 해도

햇살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는 위로가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저의 잘 못입니다

하나의 점으로

하나의 방울로

보드라운 곡선으로

쉽게 믿어버린 것은 순전히 저의 불찰입니다.

저 바다 저 바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만 가득합니다.

아무일 없는 듯 너무 감쪽같아

이제 막 꿈에서 깨어나 아이가

처음 본 까만 공간을

신비로운 눈망울로 견디는 중인 것 같습니다.
글.사진/애린
2024.6.22
서울 용산 역에서 여수까지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