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바로 곁에 있는 것

이 글은 2005년 1월 베트남 호치민 반탄박 쯩구디남에 살 때의 글입니다.

아파트 13층에서 내려다보면 베트남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때의 글을 스토리 詩로 재탄생 시켜보았습니다.

며칠 밤 낮 들리던 음악이 끊기나 싶더니 느닷없는 행진곡이 새벽공기를 부수고 있다. 길 건너 새집을 방문한 장의사 직원들의 연주이다.

고인이 이승을 떠나자마자 이런 음악을 틀어 놓는 건, 이승에서 지었던 죄를 깨끗이 씻는 의식과 함께 상갓집으로 몰려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이 음악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 굉장히 무섭고 소름 끼치는 소리로 들린다고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웃 사람들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차분한 마음으로 견디어준다.

창문을 내다보니 동녘엔 힘없이 피어오르는 놀이 보인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있다. 극에 다다르던 악단의 연주가 사그라지자, 한 제군이 하얀 종이를 태우는 모습이 보인다. 장례식은 이제 끝이 났는지 노란 장삼을 입은 스님이 길 떠날 준비를 한다.

결혼식의 택일을 잡듯 장례식 또한 택일이 필요하고 그런 모든 절차를 스님이 정하기 때문에 스님은 이 나라 장례식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이윽고 스님 뒤를 하얀 상복을 입은 상주와 어린 두 상제가 일렬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관을 맨 제군들 뒤를 베사매무쵸를 연주하는 악단들이 현란한 춤을 추는 지휘자 뒤를 따라 행진을 한다. 잠시 후 영구차는 북쪽으로 난 길을 향해 유유히 사라졌다.

몇 달 전 나는 집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는 그 집 가족들을 보았다. 그때 그들은 얼마나 부푼 꿈에 젖어 있었을까. 새집 주인과 이웃하던 잡초는 여전히 왕성한 젊음으로 빈터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덩그러니 남은 새집만이 유난히 싱싱한 모습이다.

죽음이란 태어날 때부터 바로 옆에 있는 것인데, 짧은 생명에 취해 살라갈 뿐이라고 한다. 이미 그것과 마주친 이들처럼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야겠다.

바로 곁에 있는 것/이종희

스콜이 한바탕 굿판을 벌인 지평선,

습한 공기가 땅을 박차고 오를수록

악단의 연주는 묵직한 생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사이공강으로 이어진 샛강이

검은 표정으로 집을 에워싸는 동안

몇 날 며칠 이어지던 멜로디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길 떠날 준비를 한다.

*아이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고

노인이 죽으면 축제를 한다.

제군이 태운 염원이 하얗게 승천하면

망자는 별나라에 무사히 입성할 수 있을까

아침노을이 마지막 얼굴을 내밀자

악단은 관을 맨 제군들 뒤를 따르며

현란한 몸짓으로 베사매무쵸를 연주한다

그 뒤를 스님이 따르고

상주가 따르고

상제가 따르더니

북쪽으로 난 길 끝에서 지워졌다

두 달 전, 잡초만이 우거진 빈터에

밤낮으로 공을 들여 집을 짓던 가장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이 완성되자

그 집에서 이승의 마지막 잔치를 치르고는

가벼운 깃털로 성대하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