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걸어서 우체국까지

오랜만에 나서는 거리가 여간 낯설게 다가 오는 게 아니였다.

도로 복판으로 길게 이어진 가로공원 낙엽수 들은 제 빛깔을 찾지

못한 체 떨어지고 있었고, 그 모습이 애처러운 듯 가을비는 내려 줬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짧게 느껴지던 가을...

일조량과 기온이 단풍 들기 안성 맞춤 이였던 작년 가을,

잦은 안개 속에서 보았던 노란 은행잎은 지금도 생생하여 일년 동안

내 기억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지금은 늦 가을이고, 촉촉하게 가을비가 내린다.

문득, 이 길을 한 없이 걷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어린 애들만

집에 남겨 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빠른 걸음만 재촉 하고 있다.

무엇하나 할라치면 왜 그렇게 걸리는 게 많은지...자신을 스스로가

옭아매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지만, 내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갑자기 탈피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저만치 연 갈색 긴 머리를 한 아가씨가 자주색 우산을 쓰고 앞서간다.

'아...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지...'

피식 웃음이 내 표정에서 빠져 나간다.

육교를 건너니 빵 내음이 주변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도 부족해

내 미각마저도 포위하려 달려든다.

제과점 유리창에는[제빵기술 배우고 싶은 아줌마 구함]이라고

적혀 있다.

순간 내 안에 두 개의 인격이 나눠져 말싸움을 한다.

1 "내가 한번 배워 볼까?"

2 "배워서 뭐하게.."

1 "음...언젠가 제과점 안 주인하지 뭐! 아니면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던가..."

2 "그것은 아무나 하는 줄 아니?"

1 "못할게 뭐 있어"

2 "그래...이담에 제과점 내고 애들 간식해 준다는 명분이 있다고 처.

당장 애들은 어떡하니?"

1 "애들?..."

그랬다 .또 막혔다.

또 빠져 나가지 못하게

애들부터 불쑥 내밀고 있었다.

어느 누가 자기자식 자기 손으로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겠는가 만은, 지금처럼 아이들을 품기에 안성맞춤인 싸이즈는

없을 듯 해서 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클 것이고, 이미 커버린 아이들을 내 품에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보호본능이라는 바이러스를 일부러 내 가슴에

감염 시키고 만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나이가 들 수록 아이들 곁에서

한 걸음씩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이 말 끝에 누군가가

("먹고살기 힘들어 봐! 그 말이 그리 쉽게 나오는지.

새벽이면 놀이방에 안 가려고 버티는 얘들과 씨름해 봤어?

놀이방 앞에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애 겨우 떼 놓고

하루 종일 가슴이 미어져 봤어?")

이렇게 말한다면 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 까지나 내가 만든 내 행복의 조건에 소속된

것이고, 애들만 키우면서 찾아오는 무력감이나,사회에서 점점 폐쇄

되고 있다는 느낌.그리고 나도 가끔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거나 운동할 시간을 갖고 싶다.

어디 그뿐인가...그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제과점에서 한 블 럭 지나니 그 때서야 낯익은 남부순환 도로가 보인다.

꼬리를 문 자동차 행렬이 내 눈에 들어오자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그 쯤 얼마든지 무심 할 수 있다.

지금 내 앞에 우체국이 있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우체국 앞에만 서면

가슴이 울렁거린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선가

저 곳을 통해 편지가 올 것 같은 설레임...

엄마가 되어버린 지금도

우체국 앞에만 서면

이유없는 기다림이 있어 마냥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