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쑥떡

설을 앞두고 볼을 에일 듯한 바닷바람이 가라앉습니다. 마당 건너 낮은 언덕에 서 있는 울창한 동백나무에서 점점 붉은빛이 새어 나옵니다.

황토마당 멍석 위에 널찍한 나무 떡판이 놓이고, 어머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마솥에서 이제 막 떼어낸 옹이시루를 들고 나와 찰밥을 퍼내십니다. 그 위에 삶아 물기를 뺀 쑥을 올려놓으면 “쿵덕쿵덕” 어른들의 떡메 치는 소리가 돌담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공중에서 내려온 떡메가 빈 떡판 귀퉁이로 비켜 주면, 찬물에 넣었다가 빠져나온 어머니 손에 이끌린 쑥찰밥 덩이가 질척이는 몸을 뒤척여 간신히 돌아눕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뒤척인 떡은 콩가루 위에서 나른해집니다. 납작하게 펴진 채 뚝뚝 잘린 쑥떡은 콩가루 말이를 합니다. 찰기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을 때 비로소 쑥떡은 네모난 쟁반 위에 가지런히 모입니다.

어느덧 설이 지나고 정월대보름도 지났습니다. 양지바른 밭두렁에 아기 손바닥만 한 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른바람의 날들을 거친 쑥떡은 콩가루가 털려 속살이 훤히 드러나고, 딱딱하게 굳어 금이 가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쑥떡은 처마 안쪽, 대롱대롱 매달린 네모난 석작 대바구니에 있다가 식구들이 다 모인 날이면 내려옵니다.

군불을 피워 잉걸불을 만들고 쑥떡을 석쇠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습니다. 짙은 갈색으로 부푼 자리는 숟가락으로 쓱쓱 긁으면 떨어져 나갑니다. 잘 구워진 쑥떡을 우리는 설탕에 듬뿍 찍어 먹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오랜 시간 고아 만든 고구마 조청에 찍어 드십니다. 딱딱한 껍질은 고소하고, 살아 있는 찰밥 알갱이는 씹는 재미가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사 남매 모두 짝을 만나 떠났습니다. 고향에서 명절을 쇠고 첫 배를 타고 먼 길을 가는 오빠 편으로 어머니는 늘 묵직한 박스를 보내십니다. 음식이 상할까 봐 한밤중에 깨어나 냉장고를 비웠을 어머니가 생각나 박스를 풀다 말고 전화를 드립니다.

“네 집 나누고 보니 얼마 안 된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라.”

도대체 어머니는 음식을 얼마나 하시길래 이렇게 많은 음식이 오는 걸까요. 박스 안에는 반가운 쑥떡 뭉치가 보입니다.

예전처럼 떡방아를 찧어 만들지는 않지만,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불린 쌀과 쑥이 든 대야를 이고 솔바람이 달려오는 산길을 걸어야 합니다. 먼 길을 걸어 방앗간이 있는 안도에 도착하면 명절을 앞둔 터라 수많은 대야가 방앗간 밖으로 나와 두몽안이 넘실거리는 길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도 하늘에 주홍빛 물이 들 때서야 어머니는 이야포 구름다리를 스쳐 다시 산길을 오르십니다.

지금도 쑥떡을 보면 그 산길을 오르던 어머니가 먼저 떠오릅니다. 아무리 떼어 보려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