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죽도 이야기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 느닷없이 다가온 새길로 걸음을 옮길 때, 비로소 미지는 발자국만큼 낯섦을 잃는다.

서해 낙조에 마음을 담그고, 풀벌레 소리 왁자한 안면도 솔숲에서 밤을 보냈다.

바닷가 아침의 적막은 몽돌 위를 구르는 파도가 깨우고, 가스버너 냄비 위에는 어제 잡아 해감해 둔 조개가 시원한 맛을 더한다.

“올라가는 길에 우리 죽도 들렀다가 갈까?”
아침을 먹다가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는 곧바로 울창한 방풍림 아래에 펼쳐진 야외식탁을 정리하고, 죽도행 배를 타기 위해 홍성군 남당항으로 내달렸다.

어느덧 남당항 매표소 선착장에 주차를 하고 승선권을 끊으려는데, 손님이 많아 배가 일찍 뜰 수 있다는 정보를 직원이 흘린다.

우리가 탄 배가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파도는 눈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다가오고, 갈매기는 빈손으로 멀어진다.

바다를 가로질러 10여 분 만에 죽도항에 도착한 우리는 부잔교의 검은 고무판에 흡수된 태양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천수만에 위치한 죽도는 홍성군에 있는 12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이다. 너무 아담해서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도 채 안 걸린다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그 섬은 너무도 세심하게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안쪽으로 둥그렇게 휘어진 죽도항을 지나, 방파제 끄트머리에 서 있는 하얀 등대를 뒤로하고 이 섬의 유일한 해송 군락지에 들어선다.


좁은 숲길을 걸어 맞은편 바다가 보이는 데크 난간에 다다르자,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바다에 중절모처럼 생긴 크고 작은 섬들이 너무 앙증맞게 나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할 것 같은 감동도 이내 오른쪽 섬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파식대지와 해식동으로 향한다. 안쪽으로 깊게 파인 자국을 보며 이 작은 섬이 받아들인 지난날의 파랑을 가늠하기엔 내 발자국은 너무 좁고 흐리다.


어느덧 우리는 작은 해변길을 지나고, 양쪽의 대나무 도열을 받으며 숲 안쪽 계단 끝자락에 서 있는 옹팡섬 조망대에 오른다.

죽도항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제1 옹팡섬(한용운 선생), 제3 담깨비(김좌진 장군), 제2 동바지(최영 장군) 조망대로 길이 이어진다. 홍성군과 인연이 깊은 인물들을 기리기 위함이라는데, 세 곳 모두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조망대에서든 전도, 모도, 명덕도, 오가도가 바다에 뜬 부표처럼 카메라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죽도가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여름 땡볕을 위로하듯 피어난 뭉게구름이 적당히 하늘을 남겨 주어, 그저 고맙다는 탄성은 조망대에 올라서야 절정에 이른다.

우리 몸에 있는 습기는 모조리 말려 버리겠다는 듯, 댓잎 사운대는 소리는 땡볕에 밀려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 하지만 전도섬을 가까이에 두고 바다로 난 데크길에 이르자, 한꺼번에 몰려온 바람이 지나는 이들의 시간을 축내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자연의 바람과 태양 덕분에 죽도는 우리나라 유일의 친환경 자가발전 섬이 되었다.

죽도에 대나무가 많은 건 한때 귀향 온 사람들이 섬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대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나무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온 삶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물림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풍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섬 중앙, 사구로 이루어진 듯한 서부 해안로와 동부 해안로 사이의 평지는 너무 좁아 태풍이 불면 으르렁 거리며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부질없다는 듯, 곳곳의 대나무숲은 건장하고 텃밭의 푸성귀는 싱싱하다.

마지막 제2 동바지 조망대에 오르자, 동부 해안로를 걷는 내내 따라오던 보령화력발전소가 너무 선명하게 날숨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육지는 대기 중인 충신처럼 곧고 푸르게 죽도를 향하고 있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건 역시 사람이다. 인상 좋은 홍주호 선원은 손님이 많아 지칠 법도 한데, 연신 싱글벙글 거리며 오가는 이들에게 “더운데 관광하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피곤으로 주저앉은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그 분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일부러 가지 않으면 알지 못할 섬이 있고, 아무리 무심해도 닿을 수밖에 없는 섬이 있다. 바로 죽도가 그런 섬이 아닐까 싶다. 그곳에서 불어온 예쁜 바람은 끝내 내게도 닿을 수밖에 없었을 거니까...

누군가에겐 소중한 쉼표가 되어 주는 섬,
죽도는 그렇게 가만히 우리네 갸녀린 마음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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