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여행기

그곳에는 바다를 품은 팽나무가 있다

금오도 남쪽 끝 장지마을 포구에는 오래된 팽나무 네 그루가 있다. 부모인 듯한 두 그루 사이에 자식처럼 나란히 선 두 그루. 그중 한 그루는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수령이 200년이었으니 지금은 240살을 훌쩍 넘겼다.

굵은 줄기는 몇 갈래로 뒤틀리고, 깊게 패인 나무껍질에는 송악이 하늘로 길을 내고 있다. 가지가 갈라진 틈에는 낙엽이 쌓여 흙이 되고, 그 위로 작은 풀이 돋아 있다.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가지 아래에는 데크와 벤치가 놓여 있다. 그늘에 앉으면 방파제와 정박한 배들이 보인다.

팽나무 위쪽 어디쯤에 우리 집이 있었던 것 같다. 대나무 울타리 안쪽으로 마당이 있고, 키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다섯 살 무렵의 기억이다.

팽나무 아래 선창가에는 아버지의 배가 매여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기관실에서 엔진을 고치고 계셨다. 오빠랑 둘이 갑판에서 놀다가 선미의 네모난 구멍으로 빠졌다. 오빠는 겁에 질려 입을 열지 못했다. 풍덩 소리가 들리고 아무 기척이 없자 아버지는 갑판으로 나오셨다. 오빠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아버지가 풍덩 뛰어드셨다.

또 한 번은 흠뻑 젖은 채 울면서 돌계단을 올라갔다. 길가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어찟그나~ 또 빠졌냐아~"

많은 아이들이 자라 섬을 떠난 뒤에도 팽나무는 포구에 서 있다. 겨울이면 많은 잎을 내려놓고 스산한 가지로 바다를 마주한다. 그러다 가지 끝마다 연둣빛 새잎이 돋고, 가장자리에 자잘한 톱니가 있는 잎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여름이면 무성해진 잎들이 포구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이면 가지마다 작고 둥근 열매가 익어간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바닷바람이 팽나무 잎을 뒤집는다. 거대한 가지 사이로 여전히 은빛 조각들이 몸을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