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갈 수 없는 길

사람들 기억에는 누구나 동화같은 이야기가 몇 편 쯤은 저장 되어 있다.

내 동화는 내가 힘들고 지칠 수록 더욱 또렷이 되살아나 아련한 추억 속에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

초등학교 2~3학년 동안 곡성에 있는 중앙 초등학교에 다녔었다.

따지고 보면 겨우 2년인데 내 기억에 고여 있는 그 곳에서의 풍경은 내 고향 바다 빛 만큼이나 선명하게 펼쳐져 있다. 내게 일주일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림 같은 내 유년을 꼭 한번 다녀오고 싶다.

위 아래 채로 나눠진 기와 지붕과 높다란 나무 대문.그리고 한겨울 김이 모락모락 나던 우물가...마당에는 오리 때가 엉덩이를 흔들며 후미진 곳을 헤집고 다녔고 키 큰 감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우리 집 주변에는 고물상을 하는 남자 친구 집과 하얀 기저귀 빨래 같은 국수 면 발이 온 마당에 축 늘어져 있던 여자 친구집이 있었다.그 집 앞엔 넓은 시냇가가 한겨울이면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작은 바람에도 햇살에 부서진 물결처럼 반짝이던 포플러나무가 보초를 서 주던 다리를 건너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었다.

전학도 되기 전에 학교가 궁금한 나는 수업시간 내내 운동장 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우루루 몰려 나와 비료 포대를 뒤집어 쓰던 학생들 틈에 끼어 영문도 모르고 선생님 지시에 따라 눈과 코와 귀를 막고 엎드려 있던 에피소드며.

정식으로 그 학교를 다니면서 고물상 집을 하던 남자 친구와 친해져 매일 깨끗이 씻으라는 담임 선생님 몸은 때가 하나도 없을 거라고 내기를 했던 그 순진 무구함이란...그 때 난 '선생님 몸엔 때가 하나도 안 나온다' 였다.

시내를 잇는 다리 밑은 우리가 주로 놀던 곳인데 하루는 무엇 때문인지 그 남자 아이와 큰 싸움을 했다.두 아이의 옷이 엉망이 되었고 급기야 그 아이 코에서 피가 나는 걸로 내가 이기긴 했지만 겁에 질린 내가 오히려 더 많이 울었었다.그리고는 내가 그 아이를 냇물에 깨끗이 씻겨 주었다.

곡성역을 지나면 압록강이라는 작은 강이 흘렀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그 강에서 물놀이를 했었다.

집으로 돌아 올 때면 아카시아 잎이 무성한 철길을 따라 걸으며 어린이 행진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기도 했었고.기차가 지날 때 가만 있으면 기차에 자석처럼 딱 달라 붙는 다는 한 아이 말에 저 멀리 기차가 오기라도 하면 작은 나무를 있는 힘껏 끌어 안고 기차가 어서 빨리 지나기를 바랬었다.

곡성역에서 한 정거장을 가면 늙은 고모가 살고 있던 압록이라는 작은 간이역이 있다.

마을 앞에는 푸른 섬진강이 흐르고 산으로 자꾸 올라가야 했던 고모집엔 그야말로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 없는 산촌 이였다.

어느 봄날 산비탈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철쭉을 꺾다가 꽃 무덤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뱀을 발견하고 줄행랑을 쳤던 나는 그 날밤 내내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해마다 감이며 복숭아며 한 자루씩 따다 주시던 고모는 방학을 맞아 섬에 다녀온 내가 '작은 엄마가 낳은 동생 대가리는 주먹만 했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한참을 웃으시며 여기서는 머리라고 말해야 한다고 나지막이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다.

아무리 아름답고 또 다시 가고 싶은 길이라 할지라도 조병준 님은 똑 같은 길은 두 번 가지 못한다 하셨다.돌아 나오는 길 또한 같은 길이 아니고 방향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고 그리고 이미 시간이 달라져 빛이 달라져 있으므로 ...

그래서 그리움은 가슴마다 쌓여 있는 것일까...

2003.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