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쟁이 주머니에 누런 손수건
유년시절, 이른 새벽 김을 매러 떠난 할머니 조반을 들고 거의 매일 나는 산에 있는 밭으로 올라야 했다.
늘 팔랑 이는 몸빼 바지에 하얀 수건을 쓰고 밭고랑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그래서였을까.내가 맨 처음 할머니께 드렸던 선물은 하얀 수건 이였다.
초등학교 일학년 여름방학이 되어 부모님 곁으로 떠난 후
새벽 산 밭에서 때가 되면 문득 문득 들리는 네 목소리를 쫓아 돌아 보면 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진 산길에 바람 소리만이 윙윙 지나고 있었다며 내 빈 자리를 그렇게 회상 하시곤 하셨다.
며칠 밤 낮 쏟아 지던 폭풍우에 툭툭 낙화해 그 모습 너무도 처연했던 붉은 동백 꽃잎 위에 주저 앉아 아버지 꽃상여를 남 몰래 지켜 보며 먼저 데려가 주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시던 할머니는 그 후로도 무정한 자식들을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안타깝고도 기막힌 사연들을 가슴 가득 채워야 했다.
어렸을 적 호랑이 할머니별명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전부는 아니였어도 할머니가 무서울 때가 많았었다
어느 겨울날 동네 남자아이가 던진 돌멩이가 하필이면 내 이마를 맞히고 말았다. 어쩌다 밖에서 놀다가 울며 들어오면 나는 내 서러운 마음 보다 더 큰 꾸중을 할머니께 들어야 했기에 어린 나는 피를 멈추게 한 후 집으로 들어가려 했었던 모양이다. 한참동안 외진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로 내 이마를 씻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하얗게 질려 들어오는 내 얼굴을 보시며 땅이 꺼져라 펄쩍 뛰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아지랑이 일렁이는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
이른 새벽 가픈 숨을 몰아쉬며 고향으로 다시 이사 온 우리 집에 올라오신 할머니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가서 동무들 과자 사 묵으믄 니도 이 돈 갓고 사묵어.알았지?!"하시고는
고쟁이 속 누런 손수건을 풀어 헤치며 꼬깃꼬깃한 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쥐어 주며 총총히 내려 가신 할머니.
세월이 흘러 결혼을 며칠 앞둔 나에게"느그 애비도 없이 시집을 가는 니를 보닌께 가슴이 많이 아프다" 하시며 그 때처럼 고쟁이 속 누런 손수건을 한사코 풀어 헤치시던 할머니 셨다.
험하고 깊은 생의 골짜기 마다 마르지 않던 할머니 눈물샘은 지금도 내 가슴을 간간이 무너뜨리지만 꼬부랑 우리 할머니가 더 오래오래 지금처럼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애린이네 다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