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여행기

걸어보지 못한 길

롱하이 비치 리조트
롱하이 비치 리조트

호치민시 미술대학교에서 그림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에 옆집아낙과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결국초청장이 없었던 우리는 아쉬움만 남긴 채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지만요.

롱하이 비치 리조트 앞 바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 아낙은 늘 배움에 목말라합니다. 오늘도 그녀는 집과 대학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이곳에서 5년만 더 있게 된다면 5년제인 미술대학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돌아오는 길, 마음만큼 배가 고픈 우리는 잠시 허름한 베트남 음식점엘 들렸습니다. 그곳에서 껌승(숯불에 구운 양념돼지고기)을 한 그릇씩 시켜 먹고는 그래도 가시지 않는 허기에 한 그릇을 더 먹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하필 점심때라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 갔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생각보다 느긋한 조찬을 즐겼답니다.

어느덧 향긋한 열대 과일과 진한 커피 두 잔이 우리의 테이블 위에 놓여졌습니다. 어느새 어둑해진 거리에는 스콜이 쏟아지고 있었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시간을 축낼 생각이었는데 오늘의 스콜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한참 만에 우리는 환상적인 먹빛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는 하늘을 보게 되었답니다.

롱하이 비치에서 만난 도마뱀
롱하이 비치에서 만난 도마뱀

롱하이 해변에서 밤사이 떠밀려온 조가비를 줍는 아낙들

지난달 연휴를 맞아 남쪽 바닷가 롱하이로 피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호치민시에서 약 130Km쯤 떨어진 붕따우에 들러 그곳의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을 세웠지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더욱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는 폭염에 압도되어 일행들은 모두가 리조트가 있는 롱하이로 곧장 내달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중 미국인이 세웠다는 그리스도상은 붕따우 초입에 있었고, 혼자라도 갈 생각이 있으면 다녀오라는 한 일행의 말에 나는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4차선 도로변을 가로질러 언덕을 향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썰물 때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붕따우 혼바 섬

이윽고 땅에서 올라온 열기로 온 몸에선 구슬땀이 흐르고, 한 뼘의 태양이라도 가려볼 생각으로 쓰고 있던 양산 사이로 태양 볕은 더욱 기세 등등하게 내 살에 꽂혔습니다.

계단을 오를수록 호흡은 더욱 빨라졌고, 이러다 쓰러지지 싶은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땡볕아래 바스락거리며 달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분명 그 소리는 절대 행복과 절대 불행이 동시에 허물어지는 소리였으며 폭염의 쇠락을 의미하는 소멸의 기운이기도 했지요.

붕따우 바이투이반 해변 도로
붕따우 바이투이반 해변 도로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는 그곳을 그만큼의 시간을 더 보내고야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바람은 그동안 감정에 궁핍했던 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냥 미련 없이 다가와 부서졌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기분에 오르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 기분에 그 말을 하고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높이가 30m인 그리스도상
높이가 30m인 그리스도상
그리스도상과 성모마리아
그리스도상과 성모마리아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그리스도상 입구

계단과 함께 이어지는 꽃 길과 망망대해 남중 국해

어느덧 한쪽에 신발을 벗어두고 30미터쯤 된다는 거인 예수상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지요.저 아래에 기린처럼 목을 내밀고 있을 일행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나를 잠시 머뭇거리게도 했지만, 언제 다시 오랴 싶은 내 마음을 가로막지는 못했답니다.

붕따우 산과 시내
붕따우 산과 시내

비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 아래 비교적 넓은 아래층 벽은 온통 예수의 조각과 그림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 몸을 벽에 밀착시키고야 간신히 내려오는 사람들을 비켜주며, 문득 올라오는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몸집 큰 여인이 생각났습니다.

산에서 내려다본 붕따우 시내
산에서 내려다본 붕따우 시내

마침내 저는 그리스상 발코니에 섰습니다. 저 아래 저 넓은 도시가 저 새파란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저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었을까요. 바다가 먼저였는지 하늘이 먼저였는지 서로 공평하게 살을 맞대고 이제는 떨어질 수 없는 저 광대무변의 우주,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목말라하던 그 하나의 사랑은 아니었을까요…그럼에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애틋한 사랑에 빠지고 싶은 것은 아직도 저는 사랑의 신비를 믿기 때문입니다.

붕따우 전경/ 바이투이반 해변
붕따우 전경/ 바이투이반 해변

바스락거리며 오고 있던 계절은 이미 제 곁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계절은 도착했던 시간만큼 떠나고 있었군요. 소멸해가는 계절에 남겨둔 추억이 때로는 어둔밤 박꽃처럼 내 안에 피어납니다. 가끔 추억에 젖어 보고 싶은 까닭은 다시는 같은 생각으로 그 길은 걸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일년내내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붕따우 바닷가

걸어보지 못한 길, 내가 그 길을 걷는 동안 누군가는 망망대해 칠흑 같은 세상을 밝혀주던 나의 등대였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낭떠러지에 핀 부겐베리아
낭떠러지에 핀 부겐베리아

2005.5

베트남 롱하이,붕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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