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슬픈 도라지꽃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도라지라는 어여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도라지는 슬프게도 부모도 형제도, 일가친척도 없는 고아였다.

외로울 때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어 얼굴에 그늘이지기도 했지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바우 도령을 만날 때면 세상 행복을 다 얻은 냥 들뜨기도 했었다.

늘 도라지편이 되어 좋은 이야기를 해 주던 바우 도령이 어느 날은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혼을 했다. 그 후 그들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지만, 뜻밖에도 바우 도령이 10년만 기다리면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중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이들의 슬픈 이별은 시작되고 말았다.

그 후 도라지도 집을 떠나 깊은 산속 절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허드레 일을 하면서 큰 스님의 허락을 받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도라지는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문득문득 바우 도령이 그리울 때면 바우 도령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어느덧 산속에 들어온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바우 도령이 떠난 후 열 번째 진달래 꽃이 지고 또 피었다. 도라지의 마음도 봄 꽃처럼 한 것 부풀러 올랐다. 그런데 바우 도령이 오기로 한 날이 지나고 또 여러 날이 흘렀는데도 함흥차사였다.

보다 못한 큰 스님이 마을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곳 마을 아낙네들에게 ‘중국에서 혼인을 해서 잘 살고 있다는' 소문과 '돌아오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진 뒤 소식이 끊어졌다는’ 바우 도령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도라지가 많이 가엾기도 했지만, 큰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이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그 후 도라지는 슬픔에 잠긴 많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속세를 떠나 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 깊은 산속에 혼자 밭을 일구며 살다가도 바우 도령의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산신령님께 자꾸 도련님만 생각 하면 자신에게 벌을 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세월이 무심히 흘러 도라지의 고운 얼굴에도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해 졌다. 그런데도 도라지는 여전히 바우 도령만을 생각하다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도하고, 그러다 잠이 들어 바우 도령을 만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날도 도라지는 바우 도령의 꿈을 꾸고 깨어나 울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산 신령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아직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도라지를 몹시도 꾸짖으셨다.

그런데도 도라지는 한번만 바우 도령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노하신 산신령님은 “죽지도 늙지도 말고 앞으로도 바우 도령만을 생각하며 기다리거라.”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떠나셨다. 그러자 곧 바로 도라지는 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슬픈 도라지 꽃이 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 도라지 꽃을 이곳 시내 동물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연일 쏟아지는 스콜에도 더욱 화사하게 피어있는 도라지 꽃을 4년 만에 처음 본다는 어떤 아낙은 무척이나 반갑다며 신기해했다.

처음 내가 동물원에 가자고 했을 때 냄새가 많이 난다고 반감을 갖던 그녀였기에 도라지 꽃을 만난 기쁨은 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그녀는 달개비 꽃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요즘 나는 도라지 꽃 같은 아낙들을 많이 만난다. 외국 생활이 오래일수록 외로움의 순도는 더욱 높아있다. 어떤 분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에게 사소한 일로 큰 상처를 입었다며, 뒤돌아서 가더라도 끝은 절대로 보일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사람 저마다의 생각 차야 어쩔 수 없겠지만, 상대도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을 난치병을 주었다면 그거야말로 범죄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들어 가식을 벗은 진정한 어른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하며 기다리는 도라지 꽃의 전설이 성스럽다.

진심이 보이거든...

나는

내 진심으로하여

나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깨닫는다.

그래서 점점

진심을 보이기가 어렵다.

실수로 주는 상처와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상처는

언젠가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면서 주는 인신공격은

범죄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용서와 사랑이 아닌

미움이기 때문이다.

미움은 사소한 오해로부터 시작된 것도 있고

질투로 시작된 것도 있고

다른 사고방식으로 시작된 것도 있다.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가 성찰하여야 할 일이다.

가끔 나는

누구보다 친했던 사람에게서

인간적 모독을 받고

몇 날 며칠을 앓는 나약한 마음이었다가

다시 거듭 일어서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지난 시간의 장막이 걷히고

진실이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식이 정제되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용서를 하는 길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잡아도

다시는 진심을 보일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을 사랑하자.

사람은 신이 아니다.

개개인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그 생각이 같지 않다고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자.

그리고

미움으로 시작된 말은 하지 말자.

다른 사고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은

내 영역이 넓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