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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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녘에서...

가을 깊은 날

좋은 사람들과 가을 녘을 다녀왔다.

낯선 곳이었지만

엄마 품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작은 마을이었다.

분명 달빛 어우러진 논 둑 갈꽃을 보았는데

꿈결처럼 무언가 무너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밀려드는 파도소리...

소나기가 비닐하우스 지붕을 덮치는 소리였다.

깊은 밤 생각은 언제나 부정이 앞섰다.

그 밤에도 그랬다.

불현듯 남겨질 것에 대한 걱정이 고개를 들더니

이내 꼬리를 매달고 이어지는 무게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날의 전날에도 꿈도 이상도 없는 습기 없는 생각만

잔뜩 풀어놓고는 ‘나, 그만 맥을 놓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소나기 지난 새벽바람은 참으로 거칠었다.

그래도 동은 트고 이내 떠오른 해는

공평하게 세상을 어루만져 주었다.

간밤의 사연이 감쪽같이 사라진 새벽길을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잃어버린 사랑 같기도 하고

목마른 슬픔 같기도 한,

절대의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참으로 오랜만의 습 찬 고독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잘 정돈된 틀을 떠나

이 너른 들판에 서 보고 싶었던 내 자유의 꿈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던 숱한 시간들...

일순간 허물어져 의연히 서 있는 그 언니가 생각난다.

쉰이 넘은 그 언니는 많은 것을 잃고서야 이사를 해야 했다.

남은 것이라곤 일할 수 있는 약간의 건강과 초라한 일터,

그리고 그 공간에 작은 방 한 칸.

밤늦도록 일을 하다가도 무작정 길을 떠나

어느 강변에서 세월을 낚기도 하고

좋은 인연들과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도 하고...

잃지 않고서야 어찌 이 너른 들녘을 알았으랴

저 작은 바람 끝 욕심껏 부여잡고 애태우느라

정작 나를 잃고 있겠지.

저 갈꽃은

남은 생명이 다 말라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 흔들려야하고,

저 농부는

제 육신 다할 때까지 고단한 하루를 보내느라

길 떠나지 못하는데...

그러기전에 나 다시 이 너른 들녘을 찾아

자유를 갈망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파하며,

더 많은 슬픔을 알아야

나를 만날 수 있다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아프고 가엾은 것이라고...

저 갈꽃은

서로의 몸을 얼싸안고

이리로 저리로 흔들리며 말합니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글,사진/애린

명상음악/내마음은 가을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