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내 안을 흔드는 바람

지난여름 어느 동호인의 소개로 외딴 숲을 알게 되었다는 가까운 지인이 이번에는 기어코 그곳으로 우릴 데려가고 싶어 하셨다. 툭하면 도심에서 사라지던 그분들은 별과 달이 쏟아져 금빛이룬 그 물가에서 몇날 며칠 밤을 보내곤 하셨다.

그럴 것이 어느덧 중년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그분은 가까운 이들과 느닷없는 이별이 잦아졌고, 그리하여 별게 아닐 수 있는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우울한 충만감에 휩싸이기도 하셨다. 그래서 가끔은 생의 성실함을 진지하게 탈피하는 연습을 한다고 하셨다.

세속을 벗어던져 보고서야 시간만큼 밀려드는 평안을 알았고, 비로소 내 삶의 방향을 잠시나마 알 것 같다고도 하셨다. 그분들이 그런 말을 꺼낼 때마다 갈꽃처럼 자주 흔들리는 내 마음은 설레었고, 내 미지의 그곳이 궁금했다. 그리고 홀연히 떠나 보고픈 단꿈에 젖기도 했다.

격주로 주 오일제 근무에 들어간 우리는 바쁜 일정을 마무리 짓고 밤길을 달려 마침내 그 숲에 도착하게 되었다.

초행길인 우리보다 반나절 앞서 간 그분이 숲 어귀까지 마중 나오신 덕에 무사히 그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밤의 숲길은 천년 묵은 여우가 나올법한 으슥한 길로 마치 오래전 TV속 전설의 고향 길을 걷는 듯했다.

“세상에, 오지 중에 오지네요?”

자동차 전조등에 의지한 채 달려온 길이라 사방은 지독한 어둠속 마법에 걸려있었고, 차장을 스친 나뭇가지들은 공포심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세상에...이런 곳에서 어떻게 여러 날을 보내셨어요?”

아무리 좋은 풍경도 공기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엔 모두가 구속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가 만들어 나를 가둔 올가미가 아니던가.

“지금은 안 보여 이렇지만, 새벽이오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걸?”

자정이 다되어 도착한 우리에게 미리 쪄두었던 고구마를 꺼내주며 중년의 아낙이 아침이면 새우를 잡고, 밤이면 장어를 낚으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적막한 밤 부엉이 울음소리 자장가 삼아 이 밤을 보내고 나면 안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새벽바람은 호수의 지친 살결을 한 겹씩 걷어내느라 분주했다. 쉼 없이 오가는 바람이 고마웠는지 이류 무는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며, 이제 막 초록물이 말라가는 숲으로 ,숲으로 승천하고 있었다.

이윽고 투망에 걸린 새우를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로 조반을 마치고, 계속낚시를 하겠다는 남정네들을 뒤로하고 아낙들은 풀 길을 빠져나와 산사로 난 길을 따라 올랐다.

어느덧 가을 숲은 더욱 화사한 빛을 발하며 갈바람을 타고 있는 들꽃들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가을꽃들은 그저 남은 한세월 속절없이 말라갈 뿐, 일순간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처연한 자태, 나는 그때서야 가을 국을 좋아하시던 친정엄마를 생각했다.

“어느 산중이었으면 좋겠다. 내 그냥 자연으로 시나브로 갈 수 있다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육신에 대한 한탄이었을까. 엄마는 그런 현실을 정말 못견뎌했다.

그렇게 가고 싶다 시던 숲속에 덩그러니 남은 내 마음은 자주 엄마의 하늘가를 서성였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이 오갔을 숲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그 옛날 사람들의 고풍스런 흔적에는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은 듯했다. 그들도 그랬는지 그곳에다 작은 성을 짓고 과거 속 그 장면을 담느라 여러 날과 달을 그 숲에서 보냈다고 한다.

기묘한 형상의 바윗덩이가 있다는 장소를 가리키는 여러 푯말들을 지나는 동안 크고 작은 돌무덤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소원을 빌면 정말 소원이 이루어진다." 던 어떤 아낙은 돌탑 위에 작은 돌을 얹고 다시 그 자리에서 멀어져갔다..

“어쩌면 우리네 소원도 욕심에서 비롯된 건지도 몰라요. 그래도 빌고픈 무언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이고 설렘인가요. 우리 그렇게 살아야하겠지만, 혹시라도 내 작은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언가가 있어도 너무 힘들어말아요. 어쩌면 그것은 연기처럼 홀연히 흩어지고픈 어떤 날의 내 약한 마음을 지켜주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니까요.

이윽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 작은 암자 담장 가에 서서야 동산을 이룬 여러 개의 산봉우리를 만날 수 있었다. 올라갈 숲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으나 우린 그곳에서 한참동안 망중한을 즐겼다. 얼기설기 흐트러진 내 복잡한 영혼도 점점 물빛과 백치를 닮아갔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내 가까이 있는 것이고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릴 수 없는

문 안의 세상이 있었다.

오른 만큼 다시 그 숲길을 내려와서야 비로소 그 산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세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어떤 기대도 예감도 없이 그 밖을 보았고 그리고 그 안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안에선 결코 볼 수 없었던 그 안은 참으로 뜻밖의 풍경이었다. 그것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부끄러운 내 자만의 표상이었고, 그것은 한편의 고운 시처럼 내 안을 흔드는 바람이었다. 그토록 갈망하며 보고 싶었던 내 그리움 같은...

글,사진/이종희

장소/충북 제천 금수산 무암계곡. 무암사.무암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