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때 이른 동백꽃

며칠 전 여수 오동도에서 만난

때 이른 동백꽃입니다.

그래서인지 꽃잎마다 많은 상처가 있었고 기운도 없어보였지요.

여느 때와 다르게 오늘은 딸애에게 여러 통의 문자를 받았답니다.

그 다름으로 하여 저는 확인을 해야만 했었지요.

“너 지금 어디니?”

“왜?”

“너 지금 학원 아니지?”

“응, 사실은 친구 생일이어서 친구네 있어”

순간, 아찔했습니다.

딸애가 보낸 여러 통의 문자 중에는

학원 버스를 타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딸애와 통화를 끊은 지 10여분 만에 학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들과 모듬별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딸애는 학원에 조금 늦게 도착하고

그래서 다 못한 학원 수업을 늦게까지 보충 해주겠다는...

그래서 어미는 딸애와 공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 딸애가 조금 늦게

학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딸애에게 ‘지금 당장 학원으로 가라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딸애에게 또 여러 통의 확인 전화를 해야 했고,

급기야는 받지 않는 딸애의 휴대폰에 ,

‘오늘은 학원에 안 가도 괜찮으니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는

문자를 보내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미의 애타는 마음도 아랑곳 않고 딸애는

한참동안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사실은 나...지금 친구 생일이어서

같은 반 친구들과 김포공항에 있는데

집에 갈려고 버스를 기다려도 버스가 안 와."

다시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착하게 커온 지난 날 딸애의 모습이

환영처럼 제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만에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친한 딸애의 친구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 생일 파티는 간 줄은 알고 있는데

김포공항까지 간 줄은 몰랐다며

친구엄마는 당황해 하면서도

어쩌면 좋겠냐는 제 말에

“ 우리도 어렸을 때도 그랬잖아요.

이런다고 부모님이 혼내면

우리는 더 집에 안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이번 한번만 눈감아 줍시다.

지금까지 우리 애들 너무 착하게 커왔잖아요”

그렇게 한참동안 아이들 문제로 상의를 하다가

끝내는 한바탕 웃는 것으로

통화를 끝내게 되었지요.

이윽고 딸애는 저보다 20분은 더 늦었지만

무사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제 방으로 향하는 딸애를 뒤따라

딸애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엄마 전화를 받는데 그냥 멍했어,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거짓말을 해서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많이 혼낼 것 같아 무서웠고,

학원에다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말하는 딸애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걱정을 풀어내며

그렇게 걱정이 되니까 친구들과 같이 먹는 햄버거도

하나도 맛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시 길을 잃은 딸애 덕분에

완벽한 딸애의 공범이 되어 헤매던 그 하루도

때 이른 동백처럼 그리 예쁘지는 않았지요.

그래도 꽤 괜찮은 하루임은 분명했습니다.

그동안 그 맑음에 가리어 보지 못한 딸애의 생각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때 이른 동백꽃의 여린 숨결위로

따가운 가을볕이 우수수 쏟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계절만이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자양분은 아닐까합니다.

눈 속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고운 동백꽃을 피우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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