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고독

호수만큼 고독이 고이면

흘러버릴 샛강 한 줄 놓아야 한다기에

잃어버린 연장은 흔적도 없어

하얀 도화지 한 장 폈습니다.

칠흑 같은 밤이 오고서야

넓은 호수와

한 줄 샛강이 그려졌고

한 그루 포플러 나무와 풀꽃,

흰구름이 떠가는 뒷산 하늘도

그려 놓고 싶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호수가 바다에 다다른 날

다시 찾아 보겠노라고

한줄기 추억도 없는 풀꽃을

텅 빈 벽장에 넣어두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문득

낡은 벽장 속 햇살 조각이 머문

낯익은 그림을 보게 되었지요.

흔적이라곤

어쩌다 한번 다녀간 햇살과

햇살에 묻어온 먼지가 전부였으나

한 그루 포플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포플러나무아래 풀꽃은 속삭입니다.

속살을 드러내던 호숫가

마른 덤불 바람에 슬피 울던 소쩍새,

바다보다 더 깊은 호수가

다시 호수를 이루고 강 둑이 무너져

나 살아 왔노라고...

고독이란 것은

저 푸름의 원천으로

마른 바람을 재워가는 것

나도 한 때는

작은 바람에 구슬픈 풀잎 이였으니…

글/애린  2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