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여행기

물 빛 그리움

베트남 호치민에서 나트랑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간이 휴게소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유리알처럼 맑은 물그림자가 온 바다에 드러누워 있던 까나 해변과 그곳을 닮은 슬픈 나그네의 발자국...

그곳을 그리워하기에 나는 너무 멀리 떠나있고, 간간히 그곳의 물빛이야기를 들려주던 바람의 소리도 이제는 흔적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에메랄드빛 향수는 그곳에 있고, 내 가슴에는 그것을 기억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미시령color>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이 국도를 따라 강원도 미시령 고개를 향할 때  동쪽하늘 한 귀퉁이를 넓게 자리 잡은 구름 덩이를 보았다.

얼마나 많은 산과 마을을 스쳤는지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유명한 산수화가 이랬을까 싶게 내 마음을 흔드는 겨울 산들이 다가왔다가는 멀어지고, 멀어진 풍경을 닮은 산들이 다시 다가와 오래지 않아 떠난 고운 빛을 짐작하게 할 뿐. 그 때에도 그 구름은 저만치 앞서서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그리고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마침내 산 정산에 다다를 때에서야 그 거센 바람의 실체를 느꼈다. 아마도 그곳 미시령에는 묵은 때도 머문 상처도 오래전에 지워지고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러기 전에 바람이 할퀴고 간 자리에 남은 상처가 세월 자국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했다.

그래서 그 많은 사연들이 구름 속에 고이고, 그것은 그것만을 아파하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것같다. 그리하여 우리네 기억들은 바람의 진동으로 미세하게 멀어져 수면 아래로 유유히 흘러간 건 아닐까...

대포항color>

그 빛 때문인지 속초의 밤바다는 분주했다.

바다가 토해내는 거품을 따라 해변을 걷던 늦은 밤, 그곳에서 두어 시간 전에 만났던 거친 바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바다의 심장은 더 이상 지난 것을 기억하지 않는지 차분하게 내 발자국들을 지워내고 있었다.

속초 해수욕장color>

그리고 바다는 이른 새벽 다시 만날 때서야  그 넓은 가슴을 풀어주었다.

"나에게는 수많은 얼굴이 있지.

사랑이 찾아오면 나도 그를 따라  꿈을 꾸고,

이별을 만나면 나는 빗물이 되고 말아...

그러나 나도 가끔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져...

내 심신이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에는...

내 모습이 이렇게 고운 아침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많은 갈등을 잠재우는 밤이 있기 때문이고

내 표정이 이리도 맑은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속에 흐르는 여백을 느끼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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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color>

설악산  케이블카 속 흐르는 음악이 몽롱한 내 의식을 일깨우며 다가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만원인 케이블카가 5분만에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는데도 인파는 끝없이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한 계절이 떠나갔는데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그 산 정상에 가면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알아버린다면 아름다움도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려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지 마련이지요.

이정명-바람의 화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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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color>

그리운 낙산사가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내 오는 동안 아파했던  것들이 내가 만들어낸 생채기였다면 이제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저 물빛을 만나보라고 그리운 낙산사는 오늘도 그 바다 깊숙한 내면을 유리알 같은 심성으로  쉼 없이 정화하고 있는 것같다.

그리고 그 옛날 까나 해변이, 내 어릴 적 그 바닷가의 맑은 동심이 바로 이것이었을 거라고 낙산사 언덕아래 바다는 부끄럼도 없이 속살을  다 보여주고도 부족한 그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주문진 항color>

주문진 바닷가 사람들은 하루 일을 갈무리하느라 바쁘고 그곳을 스치는 나그네 눈길은 바닷가 사람들을 담느라 바쁘다...

가끔 이렇게 그 안을 바라보는 것이 아름답다. 내 바쁜 날 내 밖의 나그네는 내 하루에 대해 어떻게 기억할까...

경포대color>

그리고 경포대 솔밭 길에서야  내 온 자리가 생각났다.

해가 지기 전에 우린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정동진color>

그리하여 우리가 다시 우리의 자리를 향해 돌아올 때에는

기운 해를 따라 어둠은 점점 잠식해왔다.

그렇게 빛이 잠이 들면 바다는 꿈을 꾸고

내 물빛 이야기는 어제너머에서 고운 빛으로 다시 만나리라.

지금은 내 온 자리를 향해 돌아 갈 때에요.

내 유년이, 까나 해변이

물 빛 그리움으로 나를 이끌 때에도

늘 갈망하는 자유를 향해 나는 떠나갔어요.

사랑 안에 모두가 하나의 빛으로 영원하길 바라지만

바람은 바람을 따라 떠나가게 되어있고

바다는 늘 그 자리에 머물게 되어있어요.

그렇게 우리가 다시 멀어져 간다고 해도

지금은 내 온 자리를 향해 돌아 갈 때에요.

다시 만날 우리네 물 빛 그리움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