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여행기·내안을 흔드는 바람 2화

내안을 흔드는 바람(2)

집 떠난 지 다섯시간 만에 우리는 충주호를 스치고 있습니다.

오래전 터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의 그리운 고향은 호수에 잠기고,

호수는 오랫동안 목이 말라

이제는 무성하게 자란 잡풀들이 호수를 지우고 있습니다.

하루 일찍 집을 떠난 건너편 지인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 밤의 달님은 유리같이 잔잔한 물결위에 아롱져

세상에는 없을 것 평안을 주었다 합니다.

그것을 깬 것은 부엉이 자장가도 아니고,

님을 찾는 산짐승 울음소리도 아니고,

세속을 연결하는 휴대폰 소리였데요.....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세파에 흔들리고 무너진 가슴들이 수 없이 스쳤을 길을 따라

오늘도 산 나무는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내 너를 안고 나를 안으마...

그렇게 한 세상 살다가 가더라도

이 찬란한 시절의 너와 나를 잊고 또 잊어

다음세상의 내가 되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길은 오늘도 길을 이루어

내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경축 행사가 끝난 산사는

현란한 연등이 낮을 밝혀

오월의 빛이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고

아직도 다 하지 못한 간절한 기도는

끝없이 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선 염치없는 내 기도는

머릿속을 헤매다

정처없이 길을 떠납니다.

내려오는 길

할머니 두 분이 말을 건넵니다.

다리가 아파서 엄두가 나지 않으니

산 아래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40여년전에 이 산사를 다니시던 중년의 아낙은

이제 아흔이 넘었다 합니다.

그분을 어머니로 두신 일흔의 따님은

산 아래까지 내려온 절의 차를 타기위해

이른 새벽 제천에서 버스를 타셨다고요...

뚜벅 뚜벅 걸어오신 먼 길이

이제는 얼굴위에 길을 만들고 있었네요.

'얼굴에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가벼워진 마음이라시면서도

빌고픈 무언가는

어쩌다 이 깊은 산골까지 이어지셨나요...'

“ 할머니, 저 잠깐 사진 좀 찍을 게요.”

오래전에 지어졌다는 영화 세트장을 스치다 말고 정차하자

두분의 할머니는 합창을 하십니다.

“그러세요...이 늙은이들은 신경 쓰지말고 ....

산 아래만 데려다 주면 됩니다.하하하"

할머니들과 헤어지고서야

때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지인들이 뜯어두신 산나물에 싸먹는 쌈밥이

기가 막힙니다.

때마침

물 건너 푸른 빛이

'나를 보려거든

너는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내가 쌓아둔 그늘을 밀치고 들어와

나를 흔듭니다.

이윽고 우리는 다시

오던 길을 따라 떠납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이제 곧

내 발자국은 지워질 테고

그 자리에 다시 푸른 길이 드리워져

누군가의 새로운 길이 되겠지요.

내 마음을 흔드는 바람을 따라..........

글,사진/애린/2009.5

장소/충북 제천 금수산 무암계곡. 무암사.무암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