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어찌 그렇게 청승맞게 늙노?"
피서 목적지는
항상 그랬듯 내고향 서고지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기차를 탓고
먼 곳까지 볼 수 있었던 맑은 날씨 덕에
서울에서 여수까지 멀고 먼 거리였지만,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도시락을 파는 아저씨와
까끔 이동매점을 끌고 다니던 점방주인은
입이 심심지 않게 해 주셨고, 무엇보다 천안역을 지나서
그 옛날 맛 보았던 호도과자를 사 먹을수 있는
기쁨도 같이했지요.
방학이라 군데군데 아이들의 장난을 제어할 수 없는
현실을 보았지만,그래도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차장밖으로 스치는 아카시아 나무와 푸른 들판에
빼곡히 들어선 벼들을 보며 한가로운 농촌의 여유도 느꼈지요.
실상 보여지는 것처럼 농촌은 그다지 여유롭지도 않을텐데
기차 여행에서 만난 산과 ,들, 하늘,구름 그 무엇도 제 눈에
여유롭지 않은게 없었습니다.
철길의 긴 끝자락에서 만난 바다는
제 가슴을 울렁이게 하기에 충분했고,
이글거리는 태양이 땅으로 쏟아내는 열기가
온 세상을 덮고 있는다 해도
그 바다,땅은 끝끝내 타 들어갈수 없는
시원한 분수가 사방에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여수시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뒷날 시어머니께서는
여객선 터미날까지 배웅을 해 주셨지요.
출항시간보다 다소 일찍 도착한 우리는 의자에 앉아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행여 내가 알던 사람이 있지않을까 하고 두리번 거리며
찾아봤지만,변모한 터미널 만큼이나 사람들도
모두 낯설었습니다.
표를 사고 아이들과 아담하게 꾸며진 실내정원을
구경하고 있을때였습니다.
"어머,오라버니 어디 다녀가세요?"
"응,우리 아들네 집에...
근디 니는 어찌 그렇게 청승맞게 늙노?"
"인자 나이가 들어서 안 그러요."
"아니,니가 안 늙는단 소리다.나이를 먹어도 하나도
안늙고 아직도 곱다는 소리다."
고향오빠를 만난 우리 시어머니와
여든이 가까워 보이는 늙은 할아버지 대화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점점 제 가슴속에 하늘빛 물결로 밀려와
끝끝내 그 자리를 비켜서 주질 못했습니다.
여든이 가까워 보이는 연세에 불구 하고 그렇게
멋들어진 말씀을 구사하는 그분을 생각할때면
나도 나이를 먹고, 그분 처럼 늙어
그런 말을 할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저만치 앞서 갑니다.
한 세상 살다 허무하게 떠날 인생입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인생에
난 그분의 말씀처럼 청승맞게 살고 싶습니다.
나이도,
건강도,
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