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바람 따라 빗물 따라
하필 멈춘 곳이
아스팔트가 깔린
도시의 뒤란
전신주 옆이었다.
더 이상 떠날 수 없는
흙먼지에 싹을 틔우고
하루 이틀 사흘...
아스팔트 틈새로
내 여린 뿌리가
내려 주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내 가느다란 다리는
거친 땅에 쓸리고
소낙비에 잎새들이
속절없이 떨어져
휘청거리던 날,
아아--
기적처럼 다가온
그 고운 손길...
그렇게 살아낸 날들은
나에게 기적이었네.
별 닿는 곳까지 자라서
영원할 것 같았던
나의 첫 사랑이
아득히 멀어져
무너져 내릴때도
나는 살아야 했었네.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에게 기적이었네.
어느 소녀의 작은 손톱에
곱게 물든 염원으로
이뤄낸 사랑이었네.
홀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남은 꿈들이
다시 기운을 낸다면
내 숨 다하는 날까지
고운 꽃잎 피우며
살아내야지.
내 작은 꽃씨들이
가슴을 열고
무지개 나라로
날아갈 때까지
피워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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