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때 이른 봄꽃을 시샘하듯
요 며칠 서늘한 바람이 떠돌고 있지만
여전히 봄은 머물고
거리는 온통 원색의 꽃들로 출렁이는
요즘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바람을 타고 찾아왔는지
십여 년전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땐
막연히 글을 썼고
시간이 거듭 될수록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여러분의 질책과 칭찬은
언제나
저의 양 갈래 길을 제시했지요.
저는 두 길을 사이에 두고
어느 해 부터인가
좋은글을 쓰고 싶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 꿈을 이룰 것에 대한
어떤 바람도 희망도 없이
마음들을 배워가며 글을 고치고
함께 위로하며 격려하며 살아왔지요.
그렇게 여러분은 제 글에 있어
동지이자 스승님이셨지요.
한편의 글을 내보일 때마다
제 안은 늘 치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남길 것인가
매일 고민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떠났던 타국에서 많은 걸 상실했고
돌아와 그 바람을 안고 산다는 것은
묵묵히 견디고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였지요.
정말 예기치 않는 사연들이
소설처럼 흘러와 사라져갔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견디고 극복하는 동안
제 가까이에는 언제나 고향이 있었고
제 서툰 마음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생활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아담한 길을 만들게 되었고
제 글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푸른 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고향홈과 여러분은
제 인생과 제 글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셨고
꿈을 찾을 수 있는
마중물이셨던 것이지요.
그 마음 오래오래 간직하며
여러분이 제게 보여 준것 처럼
가슴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글쟁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린,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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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작은 섬 산마루에 걸터앉은 초가지붕 뒤란에서
이엉을 엮으시던 아버지께서
이제 막 학교에서 돌아온 저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며
“우리 동네 오는 편지는 다 네 것이다.” 하시며
다정히 웃으셨지요.
그 시절 저는 참 많은 사람들과 펜팔을 했습니다.
여름이면 그 섬으로 캠핑 온 대학생 오빠 언니들이 많았거든요.
바다에 갇힌 섬으로 날아온 그 밖의 풍경들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그건 어부이셨던 아버지 이직으로 우리가족이
잠시나마 여러 지역에서 살아보았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두고 온 것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지요.
그것은 저에게 낯설고 척박한 땅에서 다시 뿌리내리느라
말려버린 마음을 적셔주는 귀한 물줄기였습니다.
그것들을 자주 동경해서였는지
저의 역마살 기운은 먼 이국에까지 번져 갔지요.
다시 돌아와 정착하기까지
참으로 숨이 가팠습니다.
그 모든 것을 차분히 견디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안에 여울져 흐른 오래된 그림자들을 들추어
밖으로 풀어내는 연습을 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져요.
글을 쓰면서 예전에 미처 몰랐던 저를 발견했고
저마다 풀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무기력해지는
저의 용기에 힘을 주신 여러분 많이 감사합니다.
좀 더 촉촉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마주하겠습니다.
-계간 국제문학 시 부분 신인상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