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나무가 길 건너 나무에게

푸름이 영영

떠날 것 같지 않던 네가

그래서 너무도

당당해 보이던 네가

어느 날 지나가는 바람에게

이유 없이 차이는 걸 보았어.

어떤 신음도 없이 앓고 있는 네게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지만

빈번한 그 고통이

내 깊숙한 폐부까지 와 닿던 날

나는 비로소 너를 이해하려 했지.

모든 걸 떠안고 사느라

이따금 귀에서 바람소리가 난다고

찬 겨울밤 홀로 울고 있는

너를 보았어.

얼마나 더 버텨야

걸음을 뗄 수 있는지

알고 싶은 여력도 없이

빈 가지 흔들며 떨고 있는

너를 보았어.

그러나 풀씨처럼 떠나와

끝 모를 시간을 남겨둔

갈잎의 계절 앞에서

문득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지.

찬찬히 변해가는 내 모습에서

내가 본 가엾은 넋을

거두어 본 적이 있는지를...

그래서 목 놓아

울어본 적이 있는지를...

오늘도 너는

깊은 밤에도 잠들 수 없는

6차선 도로변에서

윙윙 바람소리를 듣고 있지.

내가 너의 바람 소릴

가만히 지켜보듯

너는 내 가지 흔드는 바람을

떠안고 있지.

홀로 보는 세상에서

홀로 깬 의식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면서

차마 숨겨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 누나.

그래도

나무가 길 건너 나무에게

매일 하고싶은 말은

나에게 너는

드넓은 우주에서 날아온

미풍보다 살갑다

때로는

내 마음 깊은 곳에 흐른

고향보다 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