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건망증

점심시간에 나온

된장 뚝배기를 본 순간

행주 삶느라 켜둔

가스불이 생각났다.

일순간 기억의 에너지가

섬광처럼 빛난

가스 불에 운집해

그 밖의 모든 촉수는

정전된 듯 아득하였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야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었고

그새 행주는

내게서 빠져나간 시간만큼

허옇게 말라 가고 있었다.

새날이 밝아올수록

나와 나는 노쇠하여

서로에게 몰입하지 못한 채

몸서리쳐도

어차피 그 끝엔

까맣게 잊혀갈 수밖에..

그러나

내 걸어온 공간 속 부재가

내 인생을  채워가도

아쉬울 일도

아까울 일도 아니다.

먼 훗날 나와 내가

서러운 작별을 고하지 않고도

아득히 멀어간 은하수에

안착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