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금계국을 보며...

무채색 옷을 입고

그늘 드리운 들녘으로 나선다.

마른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도미노처럼 닫힌 문들

끝을 모르기에

틈을 밀고 들어온 소리들은

느림도 없고 약함도 없다.

그렇게 세상은

한 줄기 바람에 속절없는데

우리가 잃었다고 체념한 들길엔

어느새 노란 물결이 출렁인다.

먼 옛날, 고향을 떠나와

한때는 무력하게 스러졌을 저들

이제는 흙 닿는 데마다

제 자리 만들어

낯선 바람에 무너지는

주인의 여린 등을 토닥인다.

어쩌면 내일은

오늘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 황홀한 빛의 여운을

기억할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