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유년의 등불 아래

달님이 음습한 공기를 덮고 잠들던 밤,

오빠가 산 너머 마을에서 돌아오지 못하면서

마중을 가라는 아버지의 명이 떨어졌다.

가지 않겠다는 두 동생을 겨우 달래 가며

돌계단을 지나 으슥한 산길에 접어들자

무덤가에 장승처럼 서 있던 소나무가

어둠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산속을 떠도는 슬픈 애장의 흔적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나는 빈 가지를 흔들며 지나는 바람처럼

온갖 구실로 만든 못난 목소리들로

오빠를 원망하고 있었다.

어느덧 마을 불빛마저

밤의 두꺼운 장막에 가려 흔적이 없는데

한 시절 끔찍한 폭격에 이슬이 된 넋들이

비 오는 밤이면 부활한다는 포구를 지척에 두고

새까만 물체가 방방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마음속에 백열등을 켜두어도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손전등 빛으로 빨려 들어온 것은 오빠였다.

순간,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그렇게 무섭더냐.”

줄곧 우리 뒤를 밟고 있던 아버지셨다.

나는 지금도 그늘진 생각이

더 스산한 길을 만들어 세상 미아로 느껴질 때면

유년의 등불이 반짝이는 시간을 걸어

그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