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매화는 코끝이 시큰해져서

시린 겨울을 견딘 보람도 없이

하얗게 흩어져 흔적을 지울까 봐

당신은 먼 길을 돌아오셨나요

어둠 속에 웅크린 나를 깨우고

머뭇거린 걸음을 다독이던 당신,

설익은 꿈들이 달콤한 열매로

둥글게 여물어 밖으로 나가는 날

육각에 갇힌 당신의 아린 진물도

미련 없이 흘러내릴 수 있을까요

푸른빛에 달라붙은 그늘을 어쩌지 못해

하얗게 뒤척이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나는 자꾸만 무너져 눈물이 납니다

이제 꽃눈에 맺힌  홍조는 날아가고

꽃샘바람에 비틀거릴 때도 있지만

풋내 나는 향기를 거두어 볼 거예요

당신은 숱한 숨을 비우고 또 비우며

아득한 고개를 걸어오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