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등대가 깜박이는 이유

바다에 초록빛 눈물이 낭자하다

지척에 목선을 두고도 만질 수 없다니

등대는 생의 안쪽을 비워버린 패갑으로

꽁꽁 동여맨 암초의 의지를 떼내고 싶었다

밖으로 흘러나갈 항로를 모르기에

하루를 지탱하는 일조량만큼만 흔들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와 출렁일 때

간수에 얼룩진 이별을 치르지 않아도

썰물 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푸르게 넘실대는 파도의 고독이

끌고 온 해무만큼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은

아직도 은밀하게 바다에 서면

빙그레 웃으며 달려와 줄 것 같은

광대무변의 질긴 속울음을 믿기 때문일까

수평으로 부유하는 세속에 속박되면

진물 난 수심 정도는 거뜬하게 잊으리라,

그리움이 환각을 일으킬 때마다

노을은 검푸른 허공에 자맥질하며

애써 빙하의 시간을 지우고 있는데

등대는 어쩌자고 녹슬어 수척해진 연정에

다급한 숨비소리를 봉합하는 걸까

박제된 폐부에 물결이 인다

소금꽃 환한 포말이 나부낀다

파랑으로 다시 파랑으로

허방을 딛고 울컥울컥 흩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