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저 산에 오르면 무엇이 보일까

투명한 창으로 광합성을 건네받은 정수리는 자줏빛이다

오름의 기로에서 정해진 싹의 자리가 구석이라면

끈 떨어진 가방은 과거에 매몰되어야 할 운명이다

수척한 오늘을 다독이며 해묵은 갈증을 잘라내도

봉인된 이력은 그늘에 잠식되어 허방을 디딜 뿐,

암막 커튼을 두른 교문은 등을 돌린 채 멀어져 갔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안착한 양지는 내 것이 아니고

꺾인 채로 뿌리내린 설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공기의 맥이 잡히는 것은 밖으로 뻗어나갈 틈이 있다는 것,

하강의 줄기를 비틀어 거스르는 고동 소리는 용기이고

칠흑을 더듬어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발자국은 의지다

열린 계단을 따라 질기게 번져도 잎새가 시들했던 것은

진물 난 세상에 두고 온 교과서 때문이었을까

넝쿨진 한숨을 박차고 오른 새 한 마리,

미지를 향해 파닥이는 날갯짓이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