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봉선화는 의연하게

먼 옛날 어느 별의 인연이 있었길래

하나의 대공에 매달려 살아가는 걸까.

척박한 자리에 움튼 싹들이

어쩌다 심술궂은 세상을 만나야 했는지...

흠뻑 젖은 내가 바람에 할퀴는 날이었어

너무 당당해서 시들지 않을 것 같던 꽃잎이

잎새 없는 세상에서는 볕을 볼 수 없다며

고개를 떨구며 꽃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그날부터 내 가슴은 온통 주홍빛 물이 들어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너는 모르지?

차마 펼칠 수 없는 옹이 진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을 짓무르게 하지만,

줄곧 따라오던 설익은 향기를 서로 나눠마시며

그렁그렁 맺힌 멍울을 말릴 수 있었다.

이제 수없이 무너지게 했던 폭풍우는 떠나고

너와 나는 유속의 흐름을 눈치채지 못한 채

가을바람에 터져나갈 꿈을 그려보고 있다.

먼 훗날 아득한 바람이 데려간 곳에서는

어쩌면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지 몰라.

그때는 내가 분홍 꽃핀을 가슴에 달고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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