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꽃게를 위로하며

갑자기 커다란 꽃게 박스가 도착했다

갸우뚱하다 되짚어보니

며칠 전 통화한 고향 친구 마음이다

모든 걸 강탈한 쓰나미에 정을 잃고

바다와 등졌다는 이웃과는 나눌 수 없어

지척에 사는 오빠에게 꼭 들러달라고 했다

순간으로 일렁이던  물결이 잠이 들고

나는 N의 가슴을 풀어 간장 레시피를 뒤적인다

등껍질 다부진 꽃게를 씻는다

구석구석 살아온 여정이 촘촘하게 박혀

뾰족하고 단단한 솔을 넣어야만

생의 마지막 절망을 꺼낼 수 있다.

죽어서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발톱이

저항의 가시를 세워 단번에 손가락을 누른다

움찔 놀란 근육은

맥이 뛰어야만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꽃게도 예쁜 날을 보겠다고

꾸역꾸역 어망에 들어갔을 것이다

판단 오류는 왜 지나고 나서야 뜨는 거냐고

죽을힘을 다해 바둥거렸을 것이다

탈피를 거듭하면서도 놓칠 수 없던 열망은

빈 껍데기 같은 포만감을 추스르며

너른 세상을 향해 미끄러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느라 날카롭던 발톱 몇, 뭉텅해지고

통째로 빠져버린 파랑이 바스라진다

놀라운 일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문득 멈췄을 땐 이미 바다가 빠져나간 후였다

뻔한 끝이 있는 줄 알면서도 앙다문 주먹은

늘 마법이 풀리고서야 아차! 했다

하지만 꽃게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은

더는 늘릴 수 없는 생이 관절을 꺾는 까닭에

황홀한 미각을 토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를 한 번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길,

싱싱하고 팔딱이는 그리움 하나

주홍빛 걸음으로 포장해 갈 수 있을까

아쉬움이란 것이 엉금엉금 기어 나와

기쁘게 나를 배웅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