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잠시 숨을 고르며(시)

온 장터의 결집을 이끌던 축구가 막을 내리면

방부제에 속박된 진영은 다시 고개를 든다

원산지가 다른 품종이 진열된 가게는

기우뚱한 달팽이관을 의식하지 못한 지 오래이고

편식을 부정하면서도 붙박인 생각이 밀어낸 채소가

재고 진열대에서 시들어가는 걸 알고부터

기름진 미리내 강을 건너는 꿈에 젖었던 초년생은

허공의 벽을 품는 이어폰에 의지하게 되었다

연무의 심장이 난전에서 좌판을 벌여도

유혹의 상품은 언제나 현란한 빛이다

골라, 골라, 골라보세요

색깔만 잘 고르면 추위 걱정 없는 노후를 만납니다

푸짐하게 포장된 공약이 내일의 지침을 가리켜도

절제된 소비의 향방은 예측할 수 없었는데

과일 가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족보 없는 속보가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고부터 기어이

새까만 오물 혓바닥의 순진한 전위는 과반을 넘기고 말았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혼탁한 목소리들은 언제쯤

투명하게 여과되어 근심 없는 신상들을 진열할 수 있을까

잘 나가던 가게가 폐업 신고를 마치기까지는

높은 자리의 무심한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이번에도 순댓국집은 탄식의 술잔이 넘쳐흐르지만

가장 질긴 권력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굽이치는 여울목을 의연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