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해서 한량인 아버지를 둔 친구와, 남다른 가족 사랑을 실천하고도 시한부 인생인 아버지를 둔 내가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학창 시절, 몇 번 배를 타 본 그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가면 배밖에 탈 수 없을 것 같아,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죽을힘을 다해 윗녘에서 버텼다. 그리고 몇 번 진학할 기회가 있었던 나는, 두고두고 공부하자던 절친과 서러운 작별을 치른 후, 칼라가 흑백으로 변하는 세상을 경험하며 모든 걸 접었다.
하지만 습관적인 호기심과 상상력이 신문과 책을 뒤적이게 했고, 내가 모르는 미지를 갈망하게 했다.
그 사이 교과서의 질감도 많이 바뀌었고, 의식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어서, 미리 세금을 정산한 나는 학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내 친구들의 배움이 기억에서 흐려질 때, 나는 친구들이 배우지 못한 과목과 테니스를 배웠고 골프채도 잡아 보았다.
“참으로 똑똑한 머리들이 검사가 되고부터 공부를 하지 않아요. 그래도 검사만 하면 괜찮을 텐데, 다른 무언가를 하니 이 나라가 역행할 수밖에요.”
우리를 가르치는 분이 우리를 위로한답시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 스물하나,
추석을 앞두고 휴일도 없이 일을 하느라 선물을 사지 못한 채,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열차를 탔다. 빈손을 발견한 막냇동생이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나도 덩달아 엉엉 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잃은 귀여운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누나가 사 온 선물이 유일하다는 것을 그때는 너무 몰랐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과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들, 부자인 사람들과 부자일 수 없는 사람들의 간격을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귀하게 여기며 살았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던 것에 대하여 무작정 부끄러워했고, 주눅 들었다. 실상은 가족을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너무 고운 시절을 잃는 아름다운 선택을 했는데 말이다.
뒤늦게 만학도가 되어 알게 된 것은, 내가 지금껏 책과 세상을 놓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바라본 순간들이 너무 귀한 공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한 과거를 남기며 시작한 새로운 공부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적기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동네 그 친구는 지 성질 다 부리면서 살아도, 누가 함부로 대하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 그 친구가 미울 때가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먼저 선수 치고 있다는 걸 나에게 다 들켜버린 줄도 모르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빈정상하게 하는 것 같으면 홱 돌아선다.
돌아보면 너무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때도 참 좋았다.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내가 아픈 건 괜찮아도 내 부모 형제가 힘들면 너무 슬퍼지던, 그때 그 소중한 마음들이 우리에게는 있었으니까.



야간열차/이종희
오래전, 명절을 쇠러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싣던 날
미리 예매할 수 없었던 좌석표 대신
극적으로 산 입석표 한 장 들고
겨우겨우 기차를 탔다.
입석은 맨 끝 좌석 뒤,
좁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면
특석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통로에 서 있거나
화장실 앞에 서 있기도 하고
기차와 기차 연결 통로에 기대어 선다.
아무리 내 자리가 확보되어도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달걀 왔어요.
땅콩 왔어요.
아저씨의 목소리는
이제 곧 음료수와 군것질거리들을
가득 실은 손수레가 등장한다는 신호이다.
신문 깔고 앉았던 사람은 일어서야 하고
좌석표 주인이 내준
팔걸이에 앉아 있던 사람도 일어서
세상에서 제일 유연한 몸동작을 취해야 한다.
수원, 대전을 지나고
전주, 남원을 지나고
곡성도 지나면
녹색 의자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 자리가 내 차지가 되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푹신한 의자에 앉아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고서
스르르 단잠에 빨려든다.
“여기는 순천, 순천입니다.”
내리실 분은 미리 짐을 챙기라는
안내방송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본다.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구정 설 때는 여전히 깜깜하지만
추석 한가위 때엔 산등성이 따라
아침노을이 출렁인다.
그 풍경을 보노라면
간밤에 치르던 전쟁은 악몽이었다고
쉽게 털어내고는 경직된 몸을 뒤척여
기차가 종착역에 닿기 전에 출입구에 서 있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어쩌다
고향을 그 섬에 두고 떠나와
뱃길의 안부를 물어야 하고
뱃길이 열려야만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여객선 터미널에 가득 찼고
그중에 내 친구라도 만날라치면
흘러간 세월쯤은 얼마든지 돌이켜
그때 그 시절로 내달릴 수 있었다.
여기는...
군내리입니다.
화태리입니다.
두라리입니다.
유송리입니다.
우학리입니다.
미포입니다.
안도입니다.
심장리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서고지입니다.
건너온 바다의 거리만큼
해는 느릿하게 중천에 떠 있는데
서고지라 내린 곳은
섬이 아닌 바다 위에 뜬
작은 *종선이었다.
저 멀리 부둣가엔 엄마 모습이 보인다.
내가 밤새 야간열차를 타고
멀고 먼 공간을 지나오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쑥떡을 만드시고
조청을 고시고
내가 좋아하는...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시며
무사히 돌아오라고
빌고 또 비시느라
하얗게 밤을 새운
울 엄마 모습이 보인다.
그 시절
우리가 보았던 건 환영이었을까.
여전히 밤차는 떠나고
여전히 명절은 다가오는데
우리가 보았던 그 많은 풍경은
어디에서 찾고
우리는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은
위태하게 몸을 실은
입석표 자리인지도 모른다.
떠났던 많은 것들처럼
우리를 실은
밤기차의 기적 소리는
의식을 깨우고
꿈을 깨우며
오늘도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종선
섬이나 육지에 큰 배가 닿을 수 있는 접안 시설이 없을 때, 큰 배에서 사람이나 짐을 실어나르는 작은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