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오고 가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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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새벽 다섯 시에 길을 나서면, 차가 밀리지 않아 2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관광지가 많았다. 관광버스보다 일찍 도착하다 보니 어지간한 곳은 한가롭게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번 목적지는 정선, 한반도 지도를 닮은 감입곡류 하천을 구경할 수있는 병방치 스카이워크다.

추석 명절 연휴 여파로 비교적 덜 밀린 국도로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덕분에 목가적 풍경을 실컷 들이킬 수 있었지만, 당일 코스로는 참 멀고도 멀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어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비교적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신을 감쌀 수 있는 덧신을 신고서야 입장할 수 있는데, 유리 전망대는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보다는 많이 협소했다. 하지만 직선으로 내리꽂는 낭떠러지나 감입곡류를 이룬 하천과 굽이굽이 흘러가는 산등성이를 보는 순간, 오길 참 잘했다는 감동이 복받친다.

돌아오는 길, 평창에 들러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들른 평창재래시장은, 관광객들과 명절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단에 만 오천 원입니다.”라는 노점상 주인의 말에 시금치를 다시 내려놓는 손님을 스치고, 만들자마자 금방 동이 난 찹쌀 꽈배기 노점을 스쳐도 배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추는 이윤이 더 남은 배추전이 되기 위해 모조리 팔려버렸다는 것을 전집이 즐비한 골목을 스치며 알게 되었다.

지난 설 명절 때까지만 해도 전을 부치기 위해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을 씌우는 일은 딸애 담당이었다. 일손 하나 줄어드니 명절음식 만들기가 갑자기 복잡하다. 덕분에 모든 요리는 최소화하기로 정했는데, 큰 손이 작아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주려고 골고루 부친 전을 나누어 담고, 결혼식 날 사돈이 보낸 전복을 꺼냈다.

결혼식을 끝내고 시모님 장례식장으로 급하게 내려가느라 서둘러 길을 나선 우리 대신에 딸과 사위는, 전복 박스를 우리 집에 배달하며, 봉지봉지 담아두는 기특한 일을 했다. 가족 단톡방에  “엄마, 이거 담는 거 너무 힘들다.”라고 해서 처음엔 뭔 말인가 했다. 장례식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전복이 다섯 봉지나 있었고, 너무 많아 주위에 나누고 보니, 한 봉지가 남아 오늘 마음먹고 백종원표 요리, 마늘 전복 버터구이를 하게 이르렀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갑자기 사위 생각이 났다.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가까운 이마트 전복이라도 공수해와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시모님은 어린 막내로, 자유부인으로 참 좋은 여생을 보냈다고 우리에게 누누이 말씀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여행을 가서도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덜 죄송스러웠고, 덜 무거웠다.

 “마음속에 너희들을 가두었으면 하루도 편하게 살지 못했을 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잊었지, 있었어. 그러니까 살았지...”

마지막까지 참 편리한 여정을 실천하신 시모님 덕분에 나는 한꺼번에 큰일을 연거푸 치르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평소 소신처럼 당신 떠난 자리 슬픔도 가져가기 위함이셨을까. 지난 두 달간 진행되던 불안에서 풀려서 그런지 나는 요즘 자주 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