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게
내 나이 서른,
오랜만에 만난 이종사촌동생이 "누나는 시인이 될 줄 알았더라"라고 말하며 내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누나가 혼자 시를 낭송하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학교 때 카세트 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넣고 혼자 시 낭송 녹음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우리 집에 들이닥친 그 동생에게 들켜 얼굴이 빨개졌던 날이 있었다. 그걸 잊지 않고 또 놀리다니, 어찌나 얄미운지 동생의 등짝을 한 대 후려치고 말았다. 정말 나는 사촌동생이 생각한 것처럼 시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유년 시절, 친구를 사귈 만하면 전학을 가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을 준 만큼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혼자만의 마음자리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주로 무언가를 그리거나 쓰는 일이었다. 꽤 두꺼웠던 시집 한 권을 다이어리에 빼곡히 옮겨 적어 나만의 시집을 만들기도 했고, 서툴게 자작시를 써보기도 했다. 그걸 다시 읽어보면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피어나는데, 약간 몽환적인 안개 길을 걷는 것처럼 참 아늑한 느낌이었다.
외롭거나 지칠 때, 그리고 어떤 벽에 부딪혔을 때, 글만큼 내게 위로가 되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꺼내어 들여다보면 온통 오류투성이였다. 그 마음을 고치고 또 고치며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나는 수정해야 할 곳이 너무 많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며, 내가 미워하거나 원망했던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래서 반성하며 다시 환해지는 마음을 찾는 것, 글은 바로 그런 힘이 있다.
글은, 내 연민에 빠지지 않는, 객관적일 때 힘을 얻고, 타인의 생각을 의식하며 내 생각의 오류를 타인의 관점에서 발견하고 수정하는 일이다. 타인의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마음 하나하나에 연민의 정을 느끼며 선한 마음으로 거듭날 때, 글은 비로소 내게 온다. 그럼에도 글은, 나를 잃지 않고 진심으로 나를 대하고 사랑할 때, 소중한 가치로 거듭난다.
가끔은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내가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그럼에도 위축되는 것에 대해…… 그 모든 걸 풀어놓기엔 나는 여전히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다. 하지만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용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다양한 형식으로 내 안에서 흘러나올 때, 나는 너무 두근거리고 설렌다.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너무 낙심하거나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한 길을 오랫동안 걸으며 이탈하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누르고 다시 주저앉아버린 것도 힘든 선택이었고, 용기 있게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도 힘든 선택이었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나는 매 순간 진심을 쏟았기에 후회는 없다. 좀 더 싱그러운 시간을 만나기 위해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두리번거리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고, 무엇보다 온전히 그 길을 깊이 사랑했다.
거의 20년 전에 쓴 [바다에게]라는 시가 있다.
내겐 종교도 없고, 절실히 의지할 만한 그 어떤 대상도 찾지 못했으면서, 누구에게 이런 고백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끔 나도 모르는 내 그리운 바다가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바로 詩가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추측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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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게 / 이종희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나의 기다림을 고백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이
힘이 드는 까닭은
우리는 아직
어떤 틀에도 머물 수 없는
집시이기 때문이겠지요
잠시 되돌아본
나의 뒤란에는
나의 집착과
그것을 알아가는 고독이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이란
그저 당신이 지칠 때
한 번씩 토해내는 거품같이
흔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풀기 위한 고통을
멈출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가
견딜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고운 하늘빛 물든 어떤 날에는
세상엔 그런 날만 있을 것 같은
환상 때문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