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고향으로 가는 길(8)

“땅이 질어서 도저히 안 되겠네”

끊임없이 퍼붓는 빗줄기가 사흘 새벽에 이르자 발인식을 미뤄야 한다는 어른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아버지도 우리 곁을 떠나기 싫었던 것일까. 오일장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굵직하게 퍼붓던 빗방울이 흩날리고, 허공을 부유하던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틀이 지나고 발인식이 진행되었다. 눈부신 햇살의 축복을 받으며 황토 흙 마당에 놓여있던 꽃상여가 상두꾼들에 의해 들려지고, 만장 행렬을 앞에 둔 선소리꾼의 상엿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새랍을 나선 꽃상여는 우리 집 돌담 건너편 너른 평지에 올랐다. 그 평지에서 상여꾼들이 앞으로 나갔다가 뒷걸음치기를 반복하는 동안 선소리꾼의 애끓는 소리가 들렸다. "못 가겠네~ 못 가겠네~" 유독 뚜렷하게 들리는 그 마디가 내 식도를 가득 채운 설움으로 걸려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밀고 당기는 이별식이 지칠 때서야 꽃상여는 연둣빛 생명이 왁자한 들길을 스칠 수 있었다. 동백꽃 뚝뚝 떨어진 터널을 지나 솔밭 길에 올라도, 상여 꽃은 꺾일 줄 모르고 환하게 나풀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 산밭을 돌아보실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지, 너무 어린 우리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아버지의 무너진 어깨는, 어른들이 애써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슬프거나 힘들거나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어떤 의지 같은 것이었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무수한 빗줄기는 곧바로 수직 낙하한다. 따뜻한 옷에 동생이 만들어준 비닐 우비까지 입었으니, 이 비는 해피엔딩으로 직행하는 동심일 것이다.

온통 들풀 세상으로 변해버린 묵정밭이 보인다. 맞은 편  돌담가에 동그랗게 도드라진 수풀이 보이고, 그 앞에는 터를 늘린 머위 서식지가 보인다. 아무리 잘라내도 뿌리내린 잡목들은 작년보다 더 숫자를 늘렸고, 아랫길을 두고 이어진 밭은 대나무 숲이 차지해 버렸다. 내 친구네 집 뒤란에서부터 올라온 저 대나무 숲을 볼 때마다 저절로 친구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첨대하나 얻겠다고 갔다가 매번 호되게 야단만 맞고 돌아온 동네 오빠들이 생각난다. 결국 아무도 가져갈 수 없었던 대나무는 마당과 뒤란을 넘어 모든 걸 잠식하는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다.

가만히 고개 들어 초록 너머 무채색 하늘을 보고, 언제나 그리운 섬, 부도를 본다.* 그리고 바다를 본다. 숱한 파랑을 스쳐왔으면서 너른 바다가 보이는 산밭에 머물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은, 못가 본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그 파랑을 정면으로 맞서며 건넌 푸른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물 보러 가기*를  지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마 접을 수 없는 아쉬운 날들만 고개를 휘저을 뿐, 오늘도 하늘은 바다에 수장되어 짙은 침묵으로 여유롭다.

금오열도 홈페이지가 운명처럼 내게 온 세월도 성인이 되고도 몇 해가 더 흘렀다. 어쩌면 내가 몰랐던 고향과 부모님과 친구들을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고 깊게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 고향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막연한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내면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며 울고 웃던 날들이 꿈처럼 흘러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날 불쑥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반가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유년의 서툰 나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마치 섬을 떠나서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뭍으로 뭍으로 뻗어갔지만, 결국 사람들은 고향을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놓고 있었다. 새랍을 나서면 보이는 나로도마저 그리움으로 다가왔고,* 허물없이 지낸 고향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모든 마음이 나 혼자만의 고독이 아니라는 것을 참 많은 사람들이 풀어주고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같은 마음으로 복받치는 감정은, 공감대 형성이거나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살며시 놓고 간 한 줄의 답글마저도 온기로 느껴져 코끝이 시큰할 때가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글에 매몰되어 온종일 잔물결을 가슴에 가둔 적도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쓴 글같이 친숙했고, 그 추억 속에 들어갈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추억을 꺼내서 그늘을 밀어내고 그것으로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 꼭 껴안아주고 싶은 유년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만나고 싶은 동화가 있다는 것이고, 고향에서 보낸 시절이 얼마나 귀한 날들이었는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직접 보거나 겪지 않고는 펼칠 수 없는 섬세한 묘사와 애환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금오도 에세이를 단번에 다 읽지 못하고 오랜 날 펼쳤다가 덮었다가를 반복했다. 글이 풍경이 되어 채워진 지면에 그려진 그림은 너무 익숙해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 선명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온 지난한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다양한 칼라로 치환되고 있었음을 알지 못한 한 채, 참 많은 세월을 보냈다.

너무 오래 머문 것 같아 때때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고,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각인될까, 두려운 날도 있었다. 그 모든 마음을 극복하는 것도 용기였고, 무언가를 쓴다는 것도 용기였다. 더 잘 쓰지 못한 무력감에 휩쓸릴 때가 많았고, 더 알지 못함에 절망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무작정 걸었다. 모르면 모른 대로 쓰고 알면 아는 대로 쓰고, 어떤 목적도 꿈도 없이 그날그날을 채우며 살아왔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근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20여 년이나 걸렸다. 고향 홈페이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 모두 짧게는 몇 시간에서부터 길게는 수십 년을 고향을 떠나본 이력이 있다. 여전히 고향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 금방 마음이 다정해지고 환해지는 언어들이 "왜, 이제야 왔는가~밥은 묵었는가~얼른 오소~"라고 반겨줄 것 같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고향으로 걸어가고 있고, 고향으로 오는 사람들을 마중하고 있다. 바로 이곳으로 이어진 푸른 길을 따라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