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층계를 오르며 (시)

어느 순간 푹 꺼진 날 있었지

오르막은 너무 땡볕이어서

땡볕에 베이는 고통을 밀착해야 했어

착잡한 심정을 은유로 숨길 수 없어

한나절 방류해도

흐를 줄 모른 스토리를 전개했고

괜히 어울리지 않은 사물을 끌고 와

머뭇거릴 때도 있었지

제일 쉬운 방법이 침묵 같아도

모르면 침묵같이 어려운 것도 없었어

가볍게 스치는 단정한  바람은 감동이라고

너도 나도 하트를 날렸지,

날렸지, 아, 서정이 너무 투명해서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것 같아

일순간 긴장한 팔등에

오돌토돌하는 것이 자꾸 돋아나

먼지가 그럴까

백지가 그럴까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날아가는 것 같았어

지루한 장마가 내 속에

첨벙첨벙 들어온 것을 놓치면서

물에 갇히는 건

너무 식상한 일이라고

모두가 설익은 관조에 까매지고 있어

너무 까매서 아득했던 의미가 자꾸만 날리는데

상징이 사라진 메타포는 너무 갈증 난 일이라서

알레고리는 비틀거리면서도

우주의 중심을 꼭 물고 있지

손사래 치는 문법과 풀어낼 수 없는 수학 공식,

과학마저 증명을 놓아버린 깨알 같은 시어들이

내가 몰랐던 나를  톡톡 꺼내고 있어

뱅그르르 돌던 내 유년의 숲이 저랬을까

가지 하나 잡아당기면 와르르 쏟아지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깨물고 싶은 언어들이

풀어진 심장을 자꾸만 쫄깃하게 하는데

칼라가 흑백으로 의미 전환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야

어쩌지?

아무래도 난 모천회귀를 잃어버린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