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빛 바랜 옛 사진첩

애린님 ...

여기 저기 구석에 자리잡고 째깍거리는 시계만 세다가 고개 들어보니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는 주일의 끄트머리를 그나마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달래면서 애린님의 방을 기웃거릴 수 있었지요.

여전히 구석구석 하나하나 다독여서 담백하면서도 비릿한 파래

냄새젖은 정갈한 방을 꾸며 내는 애린님의 손끝이 부럽습니다.

부끄럽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한 한주일을 접으면서 몇 일 남지 않은

올해의 날들을 보내는 게 그리 쉽지 만은 않네요.

새벽부터 끙끙대던 다섯살박이가 "엄마, 머리가 너무 아프고 흔들려서

생각이 다 없어져 버린 것 같아... 빨리 병원 같이 가자."

열이 벌건 아이 손을 끌고 유치원에 둔 게 내내 걸리더니 급기야는 구급

차에 실려 응급실에서 링겔을 꽂고 있는 아이를 보았을 때 못난 어미의

참담함이란... 그래도 생글거리면서 재롱 찬치때 할 노래라며 엄마

고맙습니다. 를 쫑알거리는 게 왜 그리 예쁘기 보다는 안되 보이는지 ...

그새 행주산을 다녀 오셨나요. 언젠가 그 곳엘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별 느낌이 없어 지금은 행주대교를 건널 때 스쳐 가는 정도인데

금방이라도 그 곳에 가서 애린님이 보아둔 솔 숲을 찾아 보아야 겠습니다.

애린님은 추측 건데 안도가 고향이신가 보지요. 제 어림이 틀려도 상관

은 없지만요. 안도가 고향이시라면 정말 멋진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언젠가 ,그래요... 거의 십오년 전이니까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삼일 동안의 안도는 따뜻하고 포근한 기억으로 제 기억에 자리 잡고 있지요.

중학교와 달려 있는 학교 담벽 바깥은 파란 바다인 작은 초등학교로

친구가 초임 발령을 받아서 덕분에 안도의 품에 안길 수 있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언덕을 넘어 간 해수욕장에 검고 작은 돌들의 구르는 소리와 한적한

바닷가 풍경들 특히 지금도 안도는 어린 왕자 소행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작은 섬의 숲길. 겨울이라지만 숲속에 동백꽃이 붉게 피어 있는 오솔길을

조금 걷다보니 어느새 섬을 한 바퀴 다 돌았다 나요.

방파제가 있는 동고지인가 서고지인가에서 파도소리와 함께 별을 세던

멋진 안도. 자유시간이 저에게 꼭 이틀만 주어진다면 꼭 그 섬에 가보고

도 싶지요.

참 애린님과 저는 공통 분모가 또 하나 있어요. 저는 아버지 직장 때문에

경기도에 출생하여 학창시절은 줄곧 광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렇다 할

고향입네 하고 내 세울게 없고요. 성격 탓인지 기꺼운 동창도 찾질 못하고

이 곳 부천에서조차 튼실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바람 따라. 이리 저

리 쏠리는 꼴로 또 한해를 넘기는군요.

저는 십오년전에 완도 금일에서 초임발령을 받고 서쪽끝자락 강화바다

를 보다가 지금은 부천의 한 신설학교 교사로 있습니다.

제가 이렇듯 남해 바다를 못내 그리는 것은 그 바다에 빛 바랜 옛날이 묻

어 있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말이 교사지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엄마이지요.

항상 저와 티격태격 싸우는 3학년. 그새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인 다섯

살 박이 아이. 항시 바쁘다는 핑계로 따뜻한 엄마 품 한 번 제대로 안겨

보지 못한 안스러운 두 아들들 그도 둘째는 언제고 엄마 품은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난다고 쫑알대지요.

애린님과 아이들이 비슷하니까 아이 이야기를 편안히 할 수 있을 것 같지요.

가끔씩 뜸하게 우리반 아이들이 편지를 보내는 것 외는 찾는이 가 없는

제 편지함에 애린님의 편지가 놓여 있다는게 무슨! 대단한 비밀의 방을

갖고 있는 소녀마냥 감추어 두었다가 문득 생각나면 살짝 꺼내 보는

함이 있다는게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거든요.

성격탓에 이 나이 되도록 가슴 열어 보이는게 쉽지는 않지만 애린님의

방을 찾을 때곤 편안하거든요. 다른 별 다른 솜씨도 없지만

그중 글 솜씨는 더 해 꼭 이렇게 넋두리로 끝이 나고 마네요.

안녕히 계세요.

-ri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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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님.

좋은 글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

이렇게 올렸습니다.

님의 글에 비해 너무 어설펏던 답장이

왠지 부끄러웠습니다.

잠시...저에게도 있었을 안도에서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좋은글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빛 바랜 옛 사진첩을 보듯

그렇게 따사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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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님께

어제,오늘 창백하리만치 맑은 하늘...

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나요?

몇 해 전부터 애지중지 아끼던 동백나무 화분을 얼마 전 남편이 잠시

귀국했을 때 실내로 옮겨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바쁜 일정에

저도 남편도 깜박 잊고 말았지요.

아낙이 들기엔 너무 무거운 화분을 옮겨 놓으면서 온 힘을 쏟아

냈더니 허리가 좀 뻐근하긴 하네요.

금방이라도 웃어 버릴 듯 가지마다 맺힌 봉오리의 뽀얀 얼굴이 아무래도

봄을 기다리지 않을 모양이에요.

단 삼일간의 안도에서의 추억이 어쩌면 그렇게 예쁜가요.

유년의 기억들이 복잡한 퍼즐마냥 조각나 있어 쉽게 역마살로 정당화 하려거나

미화의 방책으로 순간순간 추억들을 모아두곤 있지만 다 맞춰지지 않는 그림을 보면서

때로는 서글퍼 지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채우고픈 못난 욕망의 뿌리겠지요.

작은 학교 교정에 깔 자갈과 모래를 찾아

이끔과 빼금을 수 없이 오가며 양팔에 훈장마냥 받던 문양들...

태평양에서 몰려오는 폭풍우를 막아 주던 구름다리와 산길 소나무 숲,

이름 없는 나지막한 묘지는 섬 아이들의 노래자랑 무대였고,

산길에서 따 먹던 오강 딸기며 그 주변에서 보았던 맹감나무,

비탈진 고구마밭, 돌담에 기대어 살던 소사나무,그 옆에 걸쳐 있던 까만 머루..

가을날,산자락에 너무도 곱게 피던 구절초와 들국화무리...

등교길 솔밭사이로 보이던 조각섬과 하얀 포말 매달고 행진하던 작은 배를 ...

푸른 보리밭이 황금빛으로 변할 때 들려 오던 뻐꾸기 노래...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기억들은 제게도 소중한 마음의 보물 입니다.

풀 밭을 멋 모르고 뛰어가다 개구진 섬머시마의 덫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고

성질 사나운 비바람에 맞닥뜨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땐 입술마다

새까만 머루를 먹은 듯 창백했던 날들이 세월이 갈 수록 더욱 또렷하게

형상화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추억을 또 하나 들려 드릴까요?

초등학교 졸업 무렵, 서고지 사는 아이들이 먼 길을 걸어 안도 해수욕장엘 갔어요

겨울 해변은 거대한 갈색 도화지로 변해 우리를 반겨 주었고,

배경에 꼭 어울릴 만한 삼팔선,가위센, 오징어 딱가리등 지루하지 않는 그림들로

빼곡히 그리고는 엄마께서 아끼셨던 플라스틱 손잡이 냄비를

몽돌 위에 걸고 마른 솔가지를 주워 모아 불을 피웠지요.

어느덧,끓는 물속에 넣은 라면이 적당히 익을 무렵 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순식간에 연기가 하늘로 치켜 올라 얼마나 놀랐던지요.

뜨거워진 몽돌에 걸쳐진 플라스틱 손잡이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손잡이는 온데 간데 없었고, 불 속에 주저 앉은 냄비는 재를 잔뜩 머금은

면 발만 간신히 품고 있었네요..

새 냄비 손잡이를 잃어버린 저는 미리 엄마께 야단 맞을 걱정만 잔뜩 머릿속에

채워 두었던 터라 라면을 먹었는지는 조차 기억 할 수 없었는데

제 걱정을 무색케 했던 엄마의 용서는

두고 두고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지요.

아주 사소한 것 마저 추억이란 이름에 포개 두고는

또 다시 과거 속에 풍덩 빠지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착각마저 풍요로운 제 안의 저를

매일 두둔하고 있습니다.

가끔 저의 유년을 사고 싶다는 것을 들켜 주기도 했다는 것을 리아님은

혹시 알고 계셨나요?

그래서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는지 몰라요.

혼자 아이들 키우면서 느낀 것은 좀더 강해 져야 한다는 거예요.

뜻과 상관 없이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그래도 허전 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노란빛을 띤 이 공간의 온기가

늘 제 마음을 노을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아플 때는 오로지 고통만 현실속에 안주 할 것 같아도

금방 원 위치로 돌아가면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어요.

항상 반복 되는 불안에서 탈피 했을 때

팔자도 성격을 탄다는 진리가 놓여 있었지요.

누군가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먼저 입을 열지 못했던 제가

언제부터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지

저도 가끔은 놀라고 있습니다.

라아님의 긴 메일을 받고

제 마음을 닮아 있음에 얼마나 반갑고 놀랐는지...

또 님의 편지를 읽고

이것이다 싶을 님의 추억이

얼마나 예뻣는지...

지금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빌어 드릴께요.

찬 겨울밤...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