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친정 엄마

희미한 의식 속 이였지만 잠든 내내 엄마는 내 몸을 주무르고 계시다는 걸 알았다.

한 시도 쉴 수 없었던 젊은 날, 유일하게 내 곁을 지켜 주실 때면 언제나 나는

아팠고 엄마는 밤을 지새우셨다.

유년시절 엄마와 잠시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어느 날,섬에 내려 오신 아버지는 급하게 우리를 데리고 여수 집으로 가셨다.

무슨 일인지 엄마는 하루 종일 울고 계셨고,연신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지는 왜 그렇게

침울해 보이셨는지...가끔 엄마를 달래는 아버지...그 모든 게 9개월 된 내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 이였다는 걸 먼 훗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가 잠시라도 아플 때면 엄마는 안절부절 못하여 밤을 지새우고 하셨으니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사셨을 지...

"엄마,나 어렸을 때 아프면 엄마는 얼마나 무서운 얼굴로 밥을 다 먹게 했는지 기억 나?"

"기억 나지...느그 아플 때 뭘 잘 안 묵으믄 얼매나 애가 탔는지 몰라야? 그래서

얼래고 달래고 그래도 안돼믄 야단을 쳐서라도 그놈을 다 먹게 해야 맴이 노이고 그랬어..."

"그랬지? 그러닌까 엄마도 다 먹어! 응?"

"나도 이것 다 묵었으믄 좋겄는디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가는디 어쩌끄나..."

"우리도 그 때 그랬어...진짜 안 넘어갔는데 엄마가 무서워서 먹었다구"

그래도 엄마는 몇 숟갈 뜨시지도 않고는 힘 없이 수저를 놓으셨다.

아무리 자식이 정성을 다 해도 엄마 처럼은 안돼는 것이다.

몇 일전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의 휴대폰 전화번호가

내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었다.

우리 형제 자매 전화번호를 서열 순으로 입력해 두고는 급한 일 있을 때를 위해

전화거는 방법을 가르쳐 드린 후로 가끔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응...종희냐? 그냥 심심해서 걸었다..."그러시곤 하셨다.

그래서 그랬거니 하고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엄마, 전화했어?"

"응....엄마... 다 죽겄다...."

엄마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겨우 들렸다.

"왜? 어디가 아픈데? 엉?"

"감기로 안 그냐...진작부터 아파서 보건소가서 주사 맞고 그랬는디 언능 안

떨어지드만 계속 독한 약을 먹어서 그란지 속도 매스껍고 정신이 흐릿한게 이상해..."

진통제를 먹어야 하루를 견디시는 엄마...보통 아파서는 아프다는 말도 잘 안 하시는

엄마가 아프단다..

눈앞이 캄캄했다.

"엄마는 혼자 살면서 몸이 그렇게 될 때까지 냅 뒀어? 빨리 병원가서 링겔을

맞든가 해서 빨리 낫게 하지! 혼자 살면서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하고 살면 어떡해?"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낼 아침에 바로 올라와! 그렇게 있지 말고... 아프다고 밥도 잘 안 먹고 그랬지?"

"이래갓고 어찌 갈끄나..."

"그래도 와야지...혼자 챙겨 먹지도 못 할 꺼 면서 어쩔려고 그래"

"그냥 살살 버텨 볼란다"

"살살 견딜걸 뭐하러 전화했어?"

지척에 병원이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안닌데 그 지경이 되신 엄마를 생각하니

괜히 부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

"딴 말 말고 낼 아침 배로 나와서 비행기 타고 와...알았지?"

외국 출장 준비로 바쁜 오빠도, 나도, 동생도, 그 동안 별일 없다는 엄마의

말만 까맣게 믿고 있었다. 남부럽지 않는 자식이 있으면 뭐 하겠는가...

아플 때 밥 한끼 챙겨 줄 수 있는 자식이 가까이 살지 않는 걸...

마중 나간 오빠가 갔다 준 빨간 보자기 속 상자에는 보기 좋게 손질 되어 있는

생선이 가득 찼다. 끙끙 앓으면서 엄마는 밤새 이것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는

먼 길을 들고 걸었을 것이다.

코 끝이 시큰해지고 눈 앞이 흐려졌다.'누가 이것 먹겠다고 했나...'

한참동안 식탁 위에 펼쳐 둔 상자는 주인의 손 길을 기다리고 있었고 주인은

변함없는 엄마의 마음을 원망하고 있었다.

"내 성전에 화장 안하고 서울 와 보기는 첨이다"

오빠집에서 몇 일을 보내고 어느 정도 회복되자 우리 집에 오신 엄마는 이제 서야

올라 오실 때 맨 얼굴이 생각 났는지 비식 웃으셨다.

"그렇게 아프면서 저것들은 어찌 가지고 왔는지 몰라"

"나가 안 아팠으면 김치도 담가 올라 그랬는디..."

"엄마, 제발 그만 해!우리가 김치담아 보내야지 언제까지 그럴꺼야?

앞으론 김치 담아 오면 나 하나도 안 먹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시골에 배추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배를 타고 여수까지 나가야 장을 봐서

완성되는 우리 친정 엄마의 김치는 보통 정성이 아니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고단함을 오로지 새끼들이 맛나게 먹어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신념 하나로

지금껏 김치를 담아 주셨다.

나는 가끔 엄마가 안 계시는 세상에 슬픔, 설움, 후회...인간사 수많은 감정들이

움터 날 것을 미리 생각 할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펑펑 울어 보기도 한다.

엄마와는 의견이 자주 충돌 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속내를 보이고 싶은

사이이기도 한다. 만나면 늘 나는 불평이고, 점점 늙어 가시는 엄마는 빠른

속도로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곧 잘 들켜 주시기도 하신다.

피해 가지 않은 세월의 마디가 엄마 얼굴에 깊이 드리워져 있다.아무리

좋은 맛자지 크림을 발라도 깊어진 골을 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

나는 엄마를 만나면 맛사지를 해 드린다.

엄마의 늙어 가는 모습을 목격 할 때 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나약한 자신이

점점 두려워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살 것 같으신지 엄마는 벌써부터 언제 섬으로 보내 줄 거냐고 투정을 부리신다.

가까이 오래 살고 싶어도 답답한 서울을 못견뎌 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한 때는

여수에 내려가서 살 생각을 했었다.

엄마를 고향으로 보내 드리면서 불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뒤엉켜 속상할 때가 많지만,

어쩌랴....그것이 엄마의 인생이고, 자식들은 또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을...

"엄마,한 30년만 더 살아...알았지?"

"아이고 그렇게 살면 어찌 되라고."

"나랑 지지고 볶고 살면 되지...어찌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