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잠시 걸음을 멈출 때 15화

낡은 폴더에서 잠시 길을 잃다

20 년 전 사진을 보며

새 컴퓨터로 이삿짐을 싸다가

스무 해 전 여름이 담긴 폴더를 열었다.

화면 속엔

고사리손들이 몽돌 사이 고둥을 줍고 있고

파도 소리보다 더 크게 웃던 아이들 뒤로

이제는 희미해진 고향 바다가 출렁인다.

반듯하게 펴진 아스팔트 길 아래

나의 구불구불한 유년은 낮게 잦아들었다.

흙먼지 풀풀 나던 산길은 덤불에 덮이고

숨을 고르며 바다를 내려다보던 언덕은

차가운 방파제 너머 깊은 물속에 잠겼다.

편리라는 이름으로 닦인 반듯한 길 위에서

나는 자꾸만 발이 미끄러진다.

세련된 새것들이 온기를 대신하는 동안

그 시절의 느슨한 곡선들이

아득한 시간 속으로 나를 부르고

걸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서

다시는 갈 수 없는 풍경 속을 헤맨다.

그리움은 덮어둘수록 단단한 두께로 남는 것일까.

오늘도 내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길 하나를 낸다.

현재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