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시집- 너에게 가는 길 6화

성에꽃

지나간 슬픔에 대하여


밤새 어둠이 새겨 넣은 기호를 읽는다

제 몸을 꺾어 세운 하얀 뼈마디들

부서지기 쉬운 표면 위에

엉겨 붙은 말들이 서늘하게 굳어 있다

식어버린 줄 알았던 온도가

창틀의 모서리를 타고 돌아와

유리벽 한 겹에 날 선 무늬를 돋운다

손가락 끝으로 시린 결을 짚는다

체온이 닿는 자리마다

각진 문장들이 허물어져 흘러내리고

가려졌던 너머의 풍경이 길을 연다

밖으로 달아나지도 못하고

안으로 스미지도 못한 채

경계 위에 서서 스스로를 굳히던 결정들

성에가 녹아내려 창을 씻는 동안

물방울의 궤적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젖은 유리창 너머로

더는 꺾이지 않는 볕이

곧게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