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소라의 꿈

바닥으로 미끌리는 삶은

비명을 저장하는 암시부터 배운다

진흙의 식도에서 태어나

검고 차가운 해류가 서정을 물어뜯을 때마다

몸을 비틀어 안으로 안으로 도망쳤다

상처가 딱지가 되고

딱지가 다시 뼈가 되는 동안

모서리 없는 문장들을 주워 삼켰다

짠물에 퉁퉁 불은 슬픔을 건조하기 위해

등에 업은 굴곡을 단단히 굳히고

거친 파도가 때릴 때마다

석회질 단어를 뱉어 몸의 바깥을 에워쌌다

둥글게 말린다는 것은

할퀴고 간 물살의 흔적을 껴안고 중심을 향해 걷는다는 것

모래알 같은 수모가 살갗을 파고들 때

값싼 진주 대신 소리가 머물 텅 빈 방을 깎았다

내장이 꼬이는 고통을 나이테처럼 두르고

제 살을 갈아 벽을 얇게 펴내는 밤

입구 좁은 방 안에서 시어는 비로소 홀로 맑아졌다

심해의 수압을 견디며 정제된 뼈가

어느 날 높은 탑의 하얀 종으로 내걸려

스침조차 시리게 터지는 투명한 악기가 될 때

허공에 새겨지는 가장 긴 위로가 되어

푸른 소리의 나이테로 끝없이 번져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