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너는 누구냐

내 정신에 스며들어 현재의 나를 이룬 것이 배움과 경험이라면, 길을 잃고 멈춰 선 이에게 새로움을 제시하는 원동력은 가르침과 호기심일 것이다. 문화예술사를 공부하며 생긴 긍정적 변화는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는 점이다. 덕분에 현대 미술 강의도 듣게 되었다. 강단에 선 문범강 교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공부 8년 만에 조지타운대학교 미술과 정교수가 된 인물이다. 현재 석좌교수인 그는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미술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 그가 워싱턴의 전시장에서 조선화를 마주하며, 단절된 북한 미술을 세계와 잇는 가교가 되었다. 붓과 먹만으로 유화 못지않은 입체감을 내는 조선화의 사실주의에 그는 전율했다고 한다. 화면을 뚫고 나올 듯 강렬한 색채와 굵은 붓질이 만들어내는 생동감, 윤곽선 없이 면을 채우는 몰골법과 대담한 구도는 여백을 중시하던 동양화의 고요한 틀을 단숨에 깨부수고 있었다. 세계 미술사의 공백을 목격한 순간, 그는 평양으로 향했다.
수년간 경계를 넘나들며 이 예술을 기록해 온 그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화의 실체를 세계 주요 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 무대에 올리며, 반쪽의 미술사를 하나로 엮어내는 일이었다. 오늘도 그는 강단에서 근현대 미술을 강의하며, 우리 마음속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처럼, 이념을 걷어내면 세계 미술사의 새로운 조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장벽을 넘어 직접 발로 뛰며 가려진 예술의 진실을 찾아낸 치열한 여정은,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얻고 믿어버리는 오늘날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AI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 더는 배움이 필요 없다고들 한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기만 해도 알고리즘은 우리를 가두기 위해 온갖 마케팅을 펼친다. 그 속의 세상은 오직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로만 채워지기 마련이다. 순리에 기대어 편안함을 누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은 우리 삶을 다시 피워 올리는 마중물이 된다. 요즘 문학과 미술의 공통된 화두는 익숙함을 탈피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할 때 비로소 문화 예술이 미래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치열한 고민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예술가들 덕분에, 내 안의 오랜 그늘도 한층 흐려졌는지 모른다.
강의를 듣는 내내 상상했다. 저 작은 체구의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나와 북한을 아홉 번이나 오가며 석학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교탁 위로 겨우 보일 듯한 체구로, 세 시간 동안 쉼 없이 근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강의를 펼쳤다. 시간이 부족해 조선화 소개는 짧았지만, 그는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를 집필하는 6년 동안 책을 완성하지 못할까 늘 마음 졸였다고 했다. 그 고백 속에서, 단절된 예술을 이어낸 깊고 단단한 뿌리를 보았다.

조동범 교수님 사회를 보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