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

마당 구석 볕이 잘 드는 장독대 옆에는 해마다 채송화가 아침을 밀어 올렸습니다 가물어 땅이 부석거려도 색색의 꽃잎을 터뜨리며 번지던 것은 어머니의 땀방울 맺힌 미간에서 피어나던 웃음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작은 슬레이트 지붕처럼 고개를 숙이던 동생들을 보며 나는 비 갠 뒤 마당에 쏟아질 볕을 기다렸습니다 얘들아 밥 먹자, 동생들을 불러 모으던 목소리에 마당은 분홍빛으로 젖어들었습니다
한낮의 햇살이 울타리를 넘어오면 우리 식구는 마루 끝에 앉아 나란히 발을 맞추었습니다 느닷없는 비바람에 꽃잎들이 제 색깔을 놓치고 흩어졌습니다 서쪽 바다 절벽에 드리운 주홍빛은 그대로인데 채송화가 심어진 장독대만이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꾹꾹 눌러두었던 눈물의 마디가 손끝에서 풀렸습니다 새랍 밖으로 잡풀을 밀어내던 그 고운 채송화가 빈 마당에 분홍빛 발자국을 그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