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배롱나무

식물과 시

여름 볕이 베란다 끝에 매달리면

배롱나무 가지 끝에는

작은 동그라미들이 열립니다

깨알만 한 망울들이

하루가 다르게 몸을 불리면서도

입은 꼭 다물고 있습니다

언제 온다는 기별도 없이

파앙,

어제까지 없던 꽃이

핑크빛 주름치마를 펼칩니다

한 무리가 지고

마지막 꽃잎까지 털어낸 자리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동그라미 하나

파앙,

또 한 번

나무가 환해집니다

그렇게 세 번

꽃이 지고 다시 피는 동안

매미 소리는 성글어지고

몸을 낮춘 저녁 바람이

베란다 안쪽까지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