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아줌마
설 연휴를 앞두고 혼잡했던 은행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새우모양으로 찍혀 나오던 빵을 좋아하던 아들 생각이 났다.
생각난 김에 새우 빵을 팔던 자리 까지 가 보았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오다가 지난 연말 웅덩이에 고인 물이 갑자기 얼어 있는 줄 모르고 무심코 지나가다 엉덩방아를 찧고는 아픔보다 부끄러움에 후다닥 털고 일어났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얼굴 가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왕 여기 까지 온김에 붕어빵이라도 사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 만치 투명 비닐 포장을 드리운 붕어빵 틀 앞에 한 아줌마가 열심히 움직 이고 있는데 빵은 보이질 않는다.그냥 갈까 망설이다 포장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미는데 날씨가 추워 얼어 버린 재료를 녹이느라 늦였 다며 금방 나오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아줌마 말씀에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포장 안으로 들어섰다. 허허 벌판인데도 붕어빵 굽는내와 열기가 합세해 그 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한쪽 벽에는(가마솥 찹쌀 붕어빵 4개 천 원) 이라고 쓰여 있었고, 양은 주전자와 하얀 통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멍 하게 아줌마가 움직이는 쪽만 응시하고 있는데. 첫 개시 손님이 그냥 갈까 은근히 걱정 이였는데 고맙다며 구정때 고향으로 가냐고 묻 길래 상계동 형님 댁으로 간다고 했더니,아줌마도 천호동에 큰댁이 있다며 요 며칠 내린 눈 때문에 귀향길이 걱정인 사람이 참 많다고 하시며 다행이라 하셨다.
"그래도 고향이 육지인 사람들은 참 좋을 거예요.섬이 고향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 겠어요." 했더니 고향이 어디 길래 그러냐며 자꾸 물어왔다.
내 고향 작은 섬.
대부분 내 고향을 말하면 어느 먼 이국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도 많아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돌산 아세요? 그 아래 섬이에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줌마는 화들짝 놀라시며 그 아래 섬 어딘데? 나 그 쪽 잘 알아요."
그러면서 몇 년 전 여름 휴가를 보낸 얘기를 꺼내 셨다.
영락없이 내 고향 안도를 말씀하신데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여쭈어 보았다.
"그럼!?몇 년 전에 안도 해수욕장이 텔레비젼에 소개 되서 얼마나 유명 했었다구..차를 싣고 가는 배를 타고 갔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가는지 한참을 기다렸지요. 사실은 나도 섬 사람이요..신안 알지? 땅 끝 마을..."
"네 잘 알지요"
"그 주위 작은 섬이 내 고향인데, 섬 사람이면서 섬이 뭐가 좋다고 안도까지 가서 그 고생을 했나 몰라..."
"아니,왜요?"
"2박 3일을 예정하고 갔었지...그런데 4박5일을 그 곳에서 보냈지 뭐야"
어느새 우리는 동네 언니동생이 되서 추억 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안도 해수욕장 정말 좋데...같이 갔던 사람들과 저녁이면 술잔도 기울이고,파도 소리와 밤에는 별들이 어찌나 많던지 정말 좋았어...모래 속에는 예쁜 고동도 있고...그 날도 그렇게 잠들었지...에구 그런데 말이야 한 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서 일어나 보니 주위에 아무 것도 없드라고...너무 놀라서 어찌 할 줄 모르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태풍이 왔다며 어서 빨리
학교로 대피 하라는 거야....나도 섬 사람이라서 한번씩 태풍이 오면 어떻게 된다는 걸 알았지만, 아휴...정말 내생전에 그렇게 험한 날씨는 첨이였다우.그 학교 알지?
"알죠...제가 그 학교 출신이잖아요..헤헤헤"
"그 때 그 운동장에 바닷물이 다 들어오고 굉장 하더라고"
"그럴 거예요. 남쪽으로 구름다리를 보셨나요?"
"응, 봤지..."
"그 다리가 태풍이나,바람 막이잖아요...아마 그 다리가 없었으면 더 했을 걸 요?"
"아이구 진짜 바람,바람,그렇게 무서운 바람, 식량도 다 떨어지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그래도 추억하나 만드셨네요.언제 그런 일들을 겪을 수 있겠어요."
"맞여...같이 갇혔던 사람들이랑 수제비도 해 먹고 운동장 수돗가에서 우산도 서로 받쳐 줘 가며 씻고 그랬던 기억들을 지금도 잊을만 하면 꺼내고 하니 말이야.."
"안도 해수욕장은 태풍이 한번씩 지나가야 한데요...어느 해인가... 태풍이 한번도 거치지 않았던 해가 있었거든요? 모래가 거의 사라 졌데요. 한번씩 태풍이 왔다 가면서 바닷물이 쓸어 간 모래들을 다시 퍼 올려 주거든요...거기는..."
"그래?"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도 몇 사람이 그냥 지나 갔지만 아줌마는 주위에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 말을 이으셨다.작은 섬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배를 타고 통학했던 이야기나 또 학교 주변에다 방을 얻어 자취 했던 이야기나 학창시절 추억담 등 내 유년 시절과 거의 흡사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붕어 빵 틀이 돌고,돌고 몇 바퀴를 훌쩍 돌고 있었다.더 있고 싶었지만,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처 2천 원 어치만 싸 달라고 하자 많이 기다렸다며 4개에 천 원 하는 빵을 한 개 더 주면 뭐가 남겠냐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덤으로 더 넣으셨다.
구정명절 서로 잘 새고 보자며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꽁꽁 얼어붙은 거리에 총총 걸음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마저 낯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이 앞서가고 있었다.
2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