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슬퍼 보여요

계약 날 부탁했던 책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구멍 난 표지는 A4 복사지를 오려 붙이고

곰팡이 핀 천장은 읽다만 행간을 붙여주셨지요

책이 부족한 바람에 페이지를 넘기고 입주했지만

하수구를 타고 오른 고약한 문장을 감당하지 못해

6개월 만에 다른 책으로 이사를 결정했는데요

책이 필요한 대학 가는 여전히 호황이고

읽던 책은 일주일도 안돼 팔려버렸습니다

중개사를 통해 전한 밑줄 친 결정은

대여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았으니

책갈피는 하얀색으로 새로 바꿔야 한다는데요

애초에 중고책으로 떠돌던 계약서는

일방적인 갑질로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래층도 중도에 쓰다만 사연을 덮으며 수수료 부담에

자신도 모르는 고장 난 책꽂이까지 고치고 떠났다지요

고령에 자주 낡아 소각장 가는 길이 가까워지셨다는데

어린 피눈물이 치른 책값은 차고 넘쳐서

여비로 쓰고 남은 돈은 아까워서 어떡할는지요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