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고구마

엄마께는 아주 큰 일거리가 있는 작은 텃밭이 있다.

내가 큰 일 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다 서울에 오실 때면

늘 그 텃밭 걱정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녘하늘만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텃밭에

콩,고구마,옥수수,감자,고추를 주로 심지만

작은 틈새가 보일라치면 배추도 심어 두신다.

얼마 전엔 고추 모종을 꾀 많이 심어 두었다고

무척 흡족해 하시던 목소리가 선 한데

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 다 죽여 버리고

다시 심은 고추 모종을

이번엔 바람이 모조리 쓸어 버렸단다

그래서 내가 "올 농사 다 망쳤네..하고 놀렸더니

"느그 엄마가 그렇다고 포기 할성 싶냐?"하시며

그 자리에 또 고추 모종을 심으셨단다.

엄마의 그 부지런 함과 정성 때문에

우리의 여름 휴가 간식은 늘 푸짐하다.

작년 여름 휴가 때 일이다.

엄마께서는 고구마가 조금 여문 것 같다시며

서울 갈 때 조금씩 가져 가고 싶으면 직접 파 오라 하셨다.

나와 우리 올케 언니는

귀찮다는 동생을 뒤로 하고

텃 밭으로 향했다.

어느덧 우리는

고구마 순을 거꾸로 뒤집혀 눕히고

유난히 큰 두덩을 파헤쳤다.

그러자 애기 머리만 한 고구마가 곳곳에 번지르르한 이마를 드러내 주고

발갛게 웃어 주었다.

이 들도 세력다툼을 해서 힘센 자기네들끼리

좋은 영양분을 모조리 포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렇다면 한 눈에도 영양실조로 보인

빼빼 마른 약한 고구마를 위해

그 녀석들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정의에 불탄 두 아낙은

그 두덩을 모조리 파 헤치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살찌우기에 정신 없었던 그들을 끄집어 내면 낼 수록 우린

정의에 앞장서 비지땀을 흘렀다는 그 뿌듯함과

이 큰 고구마를 보며 놀랄 가족들을 생각하며

시간이 갈 수록 가슴은 터질 듯 벅차 올랐다.

땀방울을 한 바가지 쯤 흘리고 난 두아낙은

이미 폐허로 변한 두덩을 흡족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두말 할 나이 없는 아줌쎄들의 대승 이였다.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고구마 광주리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기가 무척 버거웠지만

엄마를 비롯해 이 큰 고구마를 구경하지 못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파른 길을 두어번 오르내렸는데도

다리만 조금 후둘 거릴 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마당에는 우리가 나른 고구마가

서로 몸을 부댓기며 몽돌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저 큰 고구마를 캐던 벅찬 그 기쁨의 순간을

게으른 사람은 맛 볼 수 없을 거라며

동생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동안

대문을 열고 들어 오신 엄마께서는

한참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고구마만 멍 하니 쳐다 보셨다.

' 엄마도 큰 고구마를 보고 많이 놀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서는 힘들었을 엄마의 일을 도왔다는 뿌듯함에 빠져 있을 때서야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 하시던 엄마께서 입을 여셨다.

"느그들...무강은 왜 파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