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옛 사진첩 -2.
리아님...
딸아이의 방학식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제 손끝은 무엇하나 잡을 수 없는데 또 한 주가 속절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역마살은 저를 붙잡고 또 다시 저를 먼 곳으로 떠 밀고 있는데 아직도 저는 갈대밭에 앉아 왜이렇게 흔들리고 있는지. 오늘 저는 저의 무기력에게 한바탕 야유를 퍼 붓고 말았습니다.
지난 겨울, 빛 바랜 옛 사진첩 위에 남겨진 님과의 추억은 동백꽃 물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음을 오늘도 확인 할 수 있었지요.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해 외로움의 그늘을 말리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러는 동안 이리도 고운 님들을 만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오늘도 전 꿈을 꾼 듯 이 공간에 앉았습니다.
이제 막 제4한강을 건너면서 리아님을 따라 그 강을 건너길 잘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그러니 제가 알 지 못한 그 길을 귀띔해 주셨던 님께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지 알겠지요?
남편 곁으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제 외로움보다 더 크게 제 가슴을 멍들게 했던 다섯 살 박이 아들은 작은 방 구석 구석 지 장난감을 가득 채우고도 허기진 마음은 완구점을 그냥 지나치려 들지 않았지요.집에 돌아가면 어미의 회초리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제4한강, 유일민이 미국으로 수출 하려고 회충 표본병을 만드는 소녀들의 무표정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어머니를 보았던 것처럼 저는 지난 날 체념에 찬 저의 무표정을 기억해 냈답니다.
젊은 그들이 수 만리 낭떠러지로 떠 밀려 세상 살아갈 희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그래서 저도 그들처럼 답답한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작가님은 고맙게도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그에게 희망의 끈 하나를 슬프게 쥐어 주었지요.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그 처럼 저도 다시 제 인생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에 가서야 그 길이 어떤 길이였음을 알겠지만
지평선 아득한 그 곳 무지개 빛 유혹을 저는 어쩌면 뿌리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빛 바랜 옛 사진첩 속에 차곡차곡 내 생의 추억과 우정과 그리움을 채우며 님들 곁에 남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