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방문기
베트남 판 티엩 사막
프랑스인이 주인이라는 베트남 판 티엩 빅토리아 리조트 풰밀리 룸을 예약 한지 일주일 만에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지요.
그 날은 금요일이였고,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서니 해는 서쪽 지평선에서 겨우 한 뼘만을 남겨 두고 붉게 이글대고 있더군요. 그 곳의 해는 구름에 가리고 비에 젖지 않으면 늘 유리조각처럼 성을 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개미 때들의 모습과 거의 흡사 했던 오토바이 무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로 가는지...
까만 밤 좁은 도로 가에 끝없이 이어지는 마을과 맞은편 화물트럭 전조등에 사라졌다 불쑥 나타나던 무단횡단 주민과 곡예를 하듯 추월하는 후발 차들...위험 무지 사람들 앞에 저는 온 몸의 장기가 다 녹아나는 듯 했지요.끝까지 무사안일만을 의지할 수 밖에요.그런데도 하늘만 보면 아름다운 은하수가 마른 번개에 우수수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네시간 만에 무사히 그 곳에 도착한 우리는 가족 모두의 여권을 맡기고 민속의상을 입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의 쉼터로 들어설 수 있었지요.
생각보다 큰 방갈로에는 색색의 꽃과 현란한 과일들로 가득찬 '논 락'모자가 탁자에 놓여 있었고, 화장실과 침대 머리맡에도 꽃 바구니가 갓 시집온 새악시 마냥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풰밀리 룸인지라 다섯 개의 계단을 사이로 두 개의 침실. 방마다 엘지 브랜드를 단 에어컨과 금고, 텔레비전, 소형 냉장고 까지. 거의 호텔 수준이였지요.
판 티엩 빅토리아 리조트
귀에 익은 풀 벌레소리 낭자했던 꿈 결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빗소리를 들으며 깊이 잠을 이루지 못한 저는 동이 트기가 무섭게 남편을 깨웠습니다.넓은 창가에 하얗게 일렁이는 파도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있어야지요.
판 티엩 빅토리아 리조트
끝없어 펼쳐진 망망대해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 그 새벽 바닷가에서 무엇하나 떼어 낼 수 없는 조화에 매료돼 한참동안 모래밭을 걷는데 처음으로 내 평화가 내 가슴 가득 밀려들어 온갖 복잡 미묘한 갈등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듯 했지요.
판 티엩 빅토리아 리조트
바닷가에 우뚝 선 야외 식당에서 그 날밤 조명처럼 빛나던 마른 번개와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던 가수의 애잔한 목소리...
소라와 게, 새우, 조개를 구워 먹으며 밤이 늦도록 지난 이야기에 취했던 그 밤 추억은 우리 가족모두에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행복임에 틀임 없었겠지요.
판 티엍 빅토리아 리조트
베트남 호치민 사이공 강가 한 아파트에서 지내며 처음으로 구입한 것은 그 나라와 호츠민 시내 지도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한인들이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섬유 쿼터제가 시행되는 바람에 많은 한인들이 어려움을 겪다가 또 다시 낯선 땅으로 떠남을 반복하고 있었지요.
낮은 인금으로 가정부나 파출부를 두고 편한 생활을 유지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 교육비도 감당지 못한 한인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어디서든 빛과 그늘은 있게 마련이겠지만, 타국이니 만큼 평등한
한인 사회가 이뤄졌음 했지요.
지금은 만여명의 한인 사회에서 종교와 여러단체가 울타리를 치고 있었고,교민 잡지가 발행되어 베트남 여행정보 라든가 투자,교육등 한인 사회에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더군요.
처음 600불 정도였던 한인학교 교육비가 지금은 180불 까지 인하 되었답니다.
급식과 차비가 50불, 그리고 과외라던가 학원비.그렇게 해서 평균 500불정도 교육비가 들었고,그 외 여러 외국인 학교가 들어서 활발한 아이들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월세로 얻은 주거지에
아파트, 빌라 독채(3층을 다 씀)로 이뤄 졌으며 한 달 집세가 400~1200불 정도,석달치 보증금에 석달치 월세가 선불 이였지요.
한 달에 3500불을 주고 초 호화 주택에서 사는 잘 나가는(?)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쯤 해서 베트남 방문기를 접을까 합니다.
여러분들께 들려 드릴 요량으로 여러 정보를 수집했지만,곧 그 사회에 합류하게 되었으니,좀더 많은 곳을 보게 될 것이고,그 쯤 되면 좀더 정확하고 좋은 정보를 입수 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 동안 인터넷 바다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 즐겁고 ,유익한 여행을 했습니다.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요.
일일이 다 인사 드리지 못하고 갑자기 떠날 준비를 하게 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여러분들을 잊지 않고 또 다시 찾아 뵐 것을 약속할 수 있어요.
그 때 까지 몸 건강 하시고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행복하세요.